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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명절
  • 물푸레버들
  • 승인 2020.02.0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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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물은 지켜보고 있으면 끓지 않는다.

 

한 신문에 실린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젊은이들이 추석에 친척들로부터 무례한 질문 공격을 받을 때 필요한 지침이자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 대한 일침이기도 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고 웃음도 자아낸 칼럼이었다.

그 후 그런 질문들이 실행되고 있을까? 궁금하다.

설 전후로 물푸레에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딸,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엄마, 각자의 포지션이 달라서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기도 한다. 특히 시어머니 포지션도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사실.

시댁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셔서 친정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시댁 식구들과 대가족 해외여행을 가기도 하고, 두 아들네가 올 거라 마음이 분주한 분도 계시다. 설에만 만나고 추석은 각자 즐겁게 지내기로 시댁과 형제들이 만장일치로 규칙을 정한 집도 있고, 시댁 어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기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난 23년간 추석, 설마다 시댁에 내려갔다가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친정으로 간다. 

그간 별 탈 없이 매년 그렇게 했다는 게 감사하지만 한편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명절 사이클이 마치 지구에 닿지 않는 인공위성의 공전 같기도 하다. 

혼자 준비하는 어머님을 생각해서라도 돕는다는 마음으로 임하지만 올해는 특히 어머님의 인내심과 아버님의 곧으심에도 변화가 오길 바라는 시간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남편의 동생, 일명 도련님이 전을 부치겠다고 부엌에 와서 조용히 전을 부치다가 은근하게 어머니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전 구워봤자 식으면 아무도 안 먹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듯했다. “제가 보니까 아무도 젓가락이 안 가던데요. 배추전만 빼고요. 그러니까 이제 전은 조금만 사세요.” 어머님은 별 반응이 없으셨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는, 아주 아기 때부터 보아온 남편의 사촌 동생이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나는 “말만으로도 너무 고맙네요. 다 컸어요.”라고 말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점심을 먹고 나자 이번에는 정말 본인이 한다고 아주 싱크대에 자리를 잡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양보하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일등 신랑감일세”

매년 수많은 전을 굽고, 음식을 준비하느라 더 일찍 일어나고,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며 정신 승리를 받아들이고 있을 때, 두 싱글 남성에 대한 뜻밖의 고마움과 남편도 아들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라는 섭섭함과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명절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생활에서 성 역할이 이미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래의 명절은 어떨까? 물푸레에서 나눈 대화는 이랬다.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자고 가는 행사 자체가 너무 불편할 것 같아.”

“그냥 맛있게 저녁 한 끼 먹으면 좋겠어.” 

“나는 아들도 귀찮아. 모두 며느리네로 갔으면 좋겠어.”

“아들은 아들 집에, 며느리는 며느리 집에 가는 홈커밍데이는 어때?”

“그러면 손자는 누구를 따라가란 말이야?”

‘주전자에 물은 지켜보면 끓지 않는다.’ 이번 연휴 끝에 본 영화 ‘이스케이프 룸’에서 나온 대사다. 원자는 관찰하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양자물리학인데 그 어려운 이론은 모르겠고 나는 그냥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켜보기만 하면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 명절을 보내는 것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곧 주전자의 물이 끓을 것 같다.

물푸레버들  jony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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