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23 목 14:19
상단여백
HOME 칼럼·기고 기고
제주 4·3의 진실을 찾아 전국을.....
  • 박진우 / 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
  • 승인 2020.01.14 11:24
  • 댓글 0
소녀가 평화를 기원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정민구 기자>

 

지난 1월 3일부터 10일까지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말하는 4·3 진실”기록전이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이사장 정연순)와 (재)노무현재단제주위원회(상임대표 박진우)가 주최하고, 은평구와 은평문화재단,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후원을 하였다.

이번 기록전은 제주4·3항쟁이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기에 3.1백주년 기념하는 전국 순회 전시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4·3과 관련한 정책과 발언을 중심으로 제주4·3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화했다.

  전시장의 4·3과 관련한 대통령 기록으로는 

 -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서명과 1949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유시의 국무회의록

 - 제13대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1987년 11월 30일 김대중대통령(후보)의 서귀포 1호 광장에서 "제주도민은 4·3의 비극을 겪었다. 내가 집권하면 억울하게 공산당으로 몰린 사건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겠다"는 연설 사진과 4·3관련 발언, 그리고 2000년 4·3특별법 공포 

 - 2002년 2월 4·3의 현장을 대통령 후보로는 처음 방문한 제16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백조일손묘역 방문과 2006년 대통령으로서 4·3 위령제에 처음으로 참석한 사진과 영상

 - 2007년 3월 이명박 후보의 4·3평화공원 헌화 및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제대로 되어 있으며, 역사적 평가는 어느 당이 집권해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방명

  - 2012년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발언(4·3추모기념일 지정 포함 제주도민의 아픔이 모두 해소될때까지 계속 노력 하겠다“과 4·3평화공원 헌화

  - 2011년, 2012년, 2015년,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노무현재단 이사장, 예비후보, 민주당 당대표, 대통령후보 등)의 4·3 현장 방문과 2018년 문재인대통령의 제주4·3항쟁 70주년 추념식 참석의 기록 등 문서와 사진, 영상 등 30여 점을 통해 4·3의 진실을 알렸다.

  전시장에는 대통령들의 기록과 함께 4·3당시 공권력에 의해 불타 사라져 버린 마을에서 수확한 보리와 보리재, 채취한 흙 등을 이용한 공예 작가(이수진, 심인구) 두 명의 작품이 4·3의 진실을 대변하고 있다.

  2019년 4월 3일, 민주주의의 심장인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4·3분향소에 대한민국 경찰청장과 국방부차관이 참석하여 헌화와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야만적으로  탄압한 지 70여년 만에 가해 기관의 책임자가 4·3희생자들과 유가족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4·3은 미국군사정부가 이 나라를 통치하던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제주도민 6명 사망)을 시점으로 하며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 동안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한반도 38도선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단독선거를 반대로 하여 발생한 항쟁이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약 350여명)이 무장봉기를 하자, 미국군사정부와 이승만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토벌대(미군정과 이승만정부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군인과 경찰)를 구성하여 초토화작전(유엔이 1948년 9월에 금지한 국제협약)으로 제주도민을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제주도민(당시 인구는 약 3십만 명)이 3만 명에서 9만 명까지 죽은 사건이다(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 2003: 536). 

대한민국 정부가 희생자로 인정한 14,256명 중 85%는 공권력인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 그리고 불법 공권력인 서북청년단에 의해 희생되었고, 13%는 무장대에게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4·3은 미국 군사정부와 이승만정부가 공권력(군인과 경찰)을 동원하여 제주도민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것이며, 민간인을 군사재판에 회부하고, 무장대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는 가정아래 제주도민을 재판도 없이 곳곳에서 집단 학살하고, 젊은 사람이 집에 없다고 가족을 대신 죽이고, 많은 여성들을 겁탈하는 등 야만적인 행태를 자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고건 총리가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확정하자, 2003년 노무현대통령이 사과를 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이 4·3의 진실을 인정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이다.

은평시민들이 4.3 전시회를 보고 난 후 남긴 메모들 <사진 : 정민구 기자>

 

지난 해 1월에는 49년 당시 민간인을 군사재판(민간인을 공소한 것) 한 것이 잘못이었고, 이들에게 국가는 배상하라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이 있었으나 70여 년 전에 형무소로 끌려간 3천여 명은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돌아오지 못했다.

 70여 년 전 섬 제주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하나 된 민족이 분단된 두 개의 나라가 아닌 통일된 나라를 외쳤다. 이러한 제주민들의 노력과 희생에 대해 지난해 4월 광화문 광장에서는  은평문화재단에 상주단체인 (사)정가악회와 은평구에서 활동하는 꿈꾸는 합창단, 세계어린이합창단인 코스모폴리탄, 공동육아공동체인 라미연극놀이학교 학생들이 4370+1 국민문화제를 함께 하는 등 은평구민들이 4·3의 진실에 대해 서울 어느 시민들보다 많이 알고 있음에 대한 답례의 뜻도 고려하였다.

박진우 / 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  epnews@epnews.net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은평시민신문 '2020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 선정
은평시민신문 '2020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우선지원대상' 선정
민주당 “하위 20% 28일 개별 통보”…이의신청 가능
민주당 “하위 20% 28일 개별 통보”…이의신청 가능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