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진이가 카페에 학교 숙제를 가지고 왔다.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을 인터뷰를 해야 한단다. 갓 태어나서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보아온 그 아이가 수줍게 물어 와서  마주보고 앉아 질문을 주고받았다. 그중에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이 있었다. 전에 이런 질문을 어른들이 하면 농담반으로 ‘화장실 청소’라고 했는데, 고사리 손으로 또박또박 받아 적는 아이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서로 의견을 모아야 하는 회의가 제일 어려워.” 

물푸레를 처음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참 많은 회의를 했다. 모두가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오래도 둘러 앉아 있었다. 초반에는 15명이상 20명 가까이 회의를 했는데, 이건 거의 한 학급의 회의와 같아서 적극적인 사람, 수동적인 사람, 반대가 많은 사람, 너무 긍정적인 사람, 이해를 못하면 화가 나는 사람, 의견 표현을 못하는 사람. 백인백색 회의.

한번은 카페에서 요거트를 만들어 팔자는 의견이 나왔고, 유기농 우유를 쓸 것인가, 일반 우유를 쓸 것인가로 오랫동안 답을 내지 못하기도 했다. 유기농과 관련한 논쟁은 그 후로도 더 지속 되었는데 모든 것이 유기농 일 수는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완전히 유기농 재료만 준비하게 되면 값이 비싸지고, 그러면 문화공간으로의 문턱이 높아 오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시간을 맞춰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달마다 회의할 운영위원을 정하거나, 분야마다 담당을 두거나, 회의시간이나 기간을 바꿔보기도 했다. 포스트 잇 회의 방법을 써보기도 하고, 참석률을 높이려고 회의비를 만들기도 했었다. 잘 안 되는 조직이 회의가 길고, 잘 되는 조직은 체크하고 진행하면서 의사소통을 잘 하기 때문에 회의가 짧다고 하던가?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것 같다. 사실 이것은 회의의 문제도, 기술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함께 운영을 잘 해 나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일단 서로를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모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낸 의견을 책임져 보기.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설득을 하고 기획을 하고 나면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가치를 인정하는 것. 존재 그대로 이해하는 것. 

예를 들면 카페에서 누군가가 재미있는 것, 아름다운 것, 시간만 가는 것, 쓸모없어 보이는 것을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작은 인내, 작은 기쁨, 작은 승리를 쌓으며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 그런 작은 지지가 어떤 일을 함께 해나가는데 꼭 필요한 것 같다.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라는 말이 있다. 

숲속의 나무들이 자신의 잎을 다른 나무와 서로 겹치지 않게 하려고 마치 일부러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영역이 나뉘어 있는 모습. 그걸 과학자들은 꼭대기의 수줍음이라고 부른다. 식물학 용어로는 ‘수관기피’, ‘수관쌍양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서로의 머리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현상으로 주로 참나무나 소나무 종류가 많은 숲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나무가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촉하지 않는 이유를 햇빛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가까이 있지만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태도, 그래서 아래 식물들에게도 햇빛을 나누는 숲을 생각해 본다. 

서로 생각이 달라 힘들 때, 내 마음 같지 않아 섭섭할 때, 작은 말에 상처받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은 아닌지 조금 떨어져 생각해 보자. 서로 양보하며 수줍어하는 사이에서 다른 것들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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