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사무실 주변에는 폐지를 줍는 노인이 여럿 있다. 그 중 한 노인은 허리가 90도 가까이 꺾인 채로 손수레를 밀고 다니며 폐지를 줍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허리를 숙이고 살았던 것일까? 노인의 허리는 굽어진 채 펴지질 않는다.

인근 식당 사장님은 노인에게 줄 폐지를 챙겨 놓는다. 가끔 식당에 들러 물이라도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폐지를 주워 몇 푼 모아둔 돈을 자식들이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주면 안 되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새 나온다. 한숨이 나온다. 그 자식들의 형편은 또 오죽할까?

폐지를 챙겨 놓는 식당 사장님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열댓 명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식당을 혼자 운영한다. 다음날 손님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있을 때가 많다. 가끔 몸살이 심하게 났는지 미처 가게 문을 열지 못할 때도 있다. 지켜보는 이들이 안쓰러운 마음을 전한다.

인근 놀이터에는 아이들 몇 명이 서성거린다. 때로는 깔깔거리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그림자가 깊다. 집에 가봐야 돌봐줄 이 마땅치 않고 밖에 있어봐야 머물 곳이 시원찮다. 겨울밤이 길지만 어디서부터 봄을 맞이해야 할지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눈을 돌려 인근시장으로 가본다. 꽃가게, 애견용품가게, 그릇가게, 반찬가게, 부동산, 미장원이 늘어서 있다. 길게는 몇 십 년에서 짧게는 몇 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이 있다. 작은 떡집과 옷가게 주인이 분주하다.

지난 달 초 성북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성북 네 모녀의 장례식이 진행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숨진 지 37일만이다. 친지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 무연고 공영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겨울밤이 더 춥게 느껴진다.

부당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은평을 찾았다. 지난 2일부터 박주민 의원실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집권 여당이 책임 있는 자세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에서 아무리 노동자들의 얘기가 맞다고 판결을 내려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가 요원하다.

겨울밤에 들려오는 소식들이 춥다. 신문사 사무실 책상위에 놓인 은평구청 2020년도 사업예산안을 바라본다. 800페이지가 넘는 예산안에는 총 8390억의 돈을 시민을 위해 쓰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회변화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고 양극화해소를 위한 보건복지를 강화하며 주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이 예산안 어디쯤에 서민들의 추운 밤을 달래 줄 정책이 있을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사이, 세입과 세출 그 어디쯤, 건전한 재정운영과 자치분권 구현, 안전한 도시환경을 구축하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제공하겠다는 그 목표 사이로 허리가 90도로 꺾인 노인이, 혼자 문을 열고 닫는 가게 사장님이, 거리를 서성거리는 아이들이 지나간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는 시인의 말처럼 ‘제 속에 성냥불 켜대듯 깜박깜박 우는’ 이들의 한숨은 어디서 멈출 수 있을까?

관행이라는 이름의 예산이, 어떻게 한 번에 다 바꿀 수 있냐는 핑계를 대며, 혁신은커녕 과거에 발목이 잡힌 숫자들이 이제는 시민들 품으로 차곡차곡 꽂혀, 간밤에 울음소리 꿈이었구나 싶은 2020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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