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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붙일 수 없는 혐오의 얼굴들 - 왜 여성을 공격하는가
  • 백혜련/장애여성네트워크 교육지원센터장
  • 승인 2019.11.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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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리(설리)씨가 겪었던 모든 일들은 여성들이 언제 어디서나 겪을 수 있고, 크거나 작은 비슷한 경험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여성들이 안고 살아가는 또 다른 모습이기에 그만큼 충격이 크고 아프게 다가온다.

여성은 세계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수적으로) 젠더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부조리한 구조와 싸워야 한다. 사회는 여성에게 이 시대, 이 나라에 태어났다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몫을 정하고 그렇게 살기를 강요한다. 여성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말하거나,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거나,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공격의 대상이 된다. 최진리씨가 당한 일이 바로 이거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힘들었을 마음과 마지막 선택에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혐오가 일어나는 원인과 대상, 방식과 행위는 수없이 많은 갈래로 나뉘면서 발생 기재나 방향성마저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대부분 여성에 대한 공격을 여성 혐오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려 한다. 문제의 해결 방법도 이와 같은 시선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공격은 혐오와는 명백히 다른 접근이다.

혐오(嫌惡)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으로, 불쾌, 기피함, 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사람이 느끼는 자극의 수준을 기준으로 함)을 의미하다”라고 사전적으로 정의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차별은 연령 차별,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 성(性) 차별, 인종 차별, 성적 지향 차별, 종교 차별, 직업 차별, 연령 차별, 언어 차별, 서열주의, 종 차별, 학력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여성혐오(女性嫌惡 : misogyny) 또는 여성증오(女性憎惡)는 “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을 뜻하며, 이는 성 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사상,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여성혐오의 정의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정치, 사회, 문화적 차별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위에서 지적한 모든 차별 중 여성에 대한 차별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차별받는 각 집단 내에서도 여성에게는 또 다른 차별이 나타난다. 따라서 여성혐오라고 정의한 내용보다 실제 여성에게 일어나는 공격과 차별은 더 거대하다.

미국 작가인 리처드 라이트의 소설 「토박이」에서는 한 흑인 청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통해 미국 내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조명하면서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일하던 주인집 딸을 실수로 죽였고 겁에 질린 나머지 살인을 숨기기 위해 시체를 토막 내 보일러에 태웠다. 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옳지 않은 지, 인종 차별이 얼마나 잘못된 혐오 범죄인지를 알게 해준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 주인공에게 호의적이었던 사회운동을 하는 백인 여성을 희생자로 삼았을까? 주인공은 백인 여성을 죽였다는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도주를 하다가 자신의 흑인 여자친구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잔인하게 살해했을까?

우리는 인종 차별에 앞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어떻게 읽을 것이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그저 혐오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수 밖에 없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는 지금 여성 혐오라는 이름으로 실제 일어나는 모든 공격을 축소하고 있다. 여성 혐오를 그저 하나의 게임이자 이미지로 즐기고 소비한다. 여성을 게임 캐릭터로, 이미지로 소비하고 즐기는 일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게임 속 캐릭터로 취급되고 그림으로 표현된 사람들은 아프고 절망적이다. 그 절망이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게임을 삭제하고 갤러리를 폐쇄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 어떤 대상을 차별하는 것은 그 차별의 고리 안에 스스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위임을 기억해야 한다.

백혜련/장애여성네트워크 교육지원센터장  epnews@e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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