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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위에서 노동법 교육을 하다. 
  • 최승현 / 노무법인 삶 대표
  • 승인 2019.09.17 18:47
  • 댓글 0
인천 계양구에서 열린 민방위 교육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뒷모습만 봐도 상당히 지루해보입니다. 출처- 한국방송뉴스

올해 상반기부터 서대문 근로자복지센터의 제안으로 서대문구 민방위 교육에서 노동법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다종다양한 곳에서 교육을 하지만 민방위 훈련에서 노동법 교육을 하게 되다니,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놀라왔던 것은 ‘국민안보교육’, ‘응급상황대응교육’으로 기억되는 민방위 교육에서 노동법을 필요한 교육으로 생각하게 된 것 때문이다. 국가가 생각하기에 필수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야가 교육되는 민방위에서 노동법을 교육한다는 것은, 이제 노동법은 국민이 알아야 할 필수사항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두려웠던 것은, 나도 경험하고, 겪었던, 받기 싫고, 지루했던 그 교육을 내가 해야하나 하는 것이었다. ‘국민안보교육’이야 그렇다 치지만 ‘응급상황대응교육’은 위급상황의 심폐소생법이나 생존훈련과 같은 것이어서 필요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떠했던가? 민방위 교육이 잡히면 그 전날 술 약속을 잡고, 민방위 시간에 푹자야지 하는 생각을 했고, 강사의 강의에 눈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또한 강의를 원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할 때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어려움도 있었고,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상반기 나는 강의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4, 5회 정도 강의를 했다. 정확한 강의 제목은 “근로계약서 이해하기”였다. 30대의 민방위 교육생들은 의외로 주목해서 강의를 들었다. 지금의 중·고등학생은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민방위 교육을 받는 30대에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다. 남들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면 피해를 보는 것이고, 노동은 이 사회에서 사실상 생존인 것이고, 노동법은 생존의 룰인 것이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노동의 경험이 없거나 알바를 경험했거나 노동을 간접적으로 겪었거나 노동의 미래를 그려본다. 하지만 민방위 교육의 대상자는 사회 초년생을 조금 벗어난 시기, 불안정한 노동을 다양하게 겪은 사회의 쓴맛을 진짜로 봤거나 보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으로 나섰던 이들도 다종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은 것 같았다. IMF 이후의 절정시기를 겪은 이들의 절박함이 눈빛으로 나를 쏘는 것 같았다.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계약기간’, ‘노동시간’, ‘임금’, ‘휴가’ 등을 설명하면서 이들은 자신의 노동과 경험을 비춰보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자는 사람이 없었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만족스러웠다. 내 목소리가 커서 잠을 못잔 것 같기도 하지만 1시간이라는 짧은 강의에 액기스만 담아보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강의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질문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을 수 없었다. 질문은 따로 해달라고 하니,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현장에서의 문제다. 이제 문제는 알았는데, 그것을 대항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망설이기도 한다. 노동조합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없다. 그러면 요즘은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경우보다 어딘가에 가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명함을 나눠주며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한다. 

이제 하반기 다시 민방위 교육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들을 새로 맞게 될지 또 다시 떨린다. 그리고 좋은 강의평가를 받아서 이러한 강의가 꾸준히 계속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지역까지 민방위에서의 노동법 교육이 확장됐으면 좋겠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하는 의무교육에서 어떤 것을 알려줘야 하나 하는 측면에서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이 제도화 되고, 초중등 수준별 커리큘럼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는 변화하는 노동법 내용을 다양한 방식의 교육을 통해서 계속 업그레이드 하고, 각자의 노동과 삶에서 주체적이 돼야 한다고 본다. 

민방위 교육의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게 된 ‘노동법’의 시작을 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임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각종 공적인 교육제도의 새로운 주제로 ‘노동법’이 들어가길 바란다. 이것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을 존중하면서 사업을 경영하는 사용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최승현 / 노무법인 삶 대표  nanalg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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