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브래드버리

배경은 미래사회, 책이 태워지는 세상이다. 지나친 감성화로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는 세균이 되어버린 책. 주인공 몬태그는 그 책을 태우는 방화수(fireman)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는 대신 거실에 설치된 여러 개의 TV를 보며, 귀에선 이어폰을 빼지 않는다. 가족 간의 대화는 사라지고 끝없이 가짜 정보, 혹은 쓸데없는 이야기들에 중독되어 생각에 잠길 틈을 주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느 날 동네에 특이한 소녀 클라리세가 나타난다. 그녀의 가족은 드물게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고, 걸어서 산책을 나가는 사람 들’이다. 골목에서 마주친 클라리세는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묻고, 이것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생각하기’에 시동을 걸어버렸다. 자신도 모르는 새 자꾸만 질문을 던지고 있는 몬태그. 그는 책을 태우러 갔던 집들에서 책과 함께 태워지기를 택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진다. 목숨만큼 소중한 ‘책’ 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는 금기의 열매를 입에 대버렸다.태우러 간 집에서 책을 한 권 빼돌리고 만다. 

3개의 TV말고도 하나가 더 필요하다며 몬태그를 조르는 아내 밀드레드는 남편의 변화가 두렵지만 모른 체한다. 수소문 끝에 아직 책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는 전직 교수 파버를 만나게 된 몬태그. 혁명이든 전쟁이든 책을 허용하는 세상을 위해,아니,책을 위해 움직이고자 하는 삶에 감화된다. 이를 알게된 방화서장인 비티의 끈질긴 추격이 시작된다. 다툼 끝에 비티를 살해한 몬태그의 도주 과정이 TV에 생중계 된다. 

도망길에 사회에서 추방된 무리를 만나 합류하게 된 몬태그는 그들이 각자 읽은 책 을 통째로 암기하고 다니는 인간도서관임 을 알게 된다. 인간도서관 무리가 발각되기 직전 세상의 모든 지식의 소멸을 앞두고 기적처럼 대폭발이 일어나 도시는 폐허가 된다. 전쟁이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몬태그와 무리, 다시 묵묵히 도시를 향해 발걸음 을 옮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이 소설을 UCLA 도서 관에서 썼다고 한다. 1다임(10센트)을 내고 30분간 타자기를 쓸 수 있었던 이 시기 그는 최고의 집중도를 발휘하며 많은 작품을 써 냈던 그 때가 자신의 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 했던 시절이라 기억한다. 이 책의 후기에는 도서관과 사서에 대한 레이 브래드버리의 고마움과 애정이 절절이 묻어나 있다. 비슷한 상황을 다룬 영화 <이퀄리브리엄>과도 비교해서 보면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책의 보고인 도서관에서 책의 소멸과 회생을 다루는 소설을 쓴 것에 그의 상상력의 출발과 흐름을 짐작해 볼 수 있어 또한 흥미롭다. 

이 작품은 1953년에 발간되었다. 시간대 로 보면 배경이 되고 있는 근 미래는 어쩌면 지금쯤일 수도 있겠다.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각자의 영상에 몰두하고 대개는 맥락 없는 잡담에 빠지거나 가끔가다 오가는 화제 역시 매체에 대한 이야기 뿐인 우리의 모습 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아 읽으면서 소름이 돋는 대목들이 있다. 

이렇게 책을 없앤 사회가 지향하는 모습은 어떤 걸까? 허튼 생각을 막고 사회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의심 없이 시민들이 끄덕여주는 것,여기에 틈을 만들고 그 틈에 생각과 의지를 넣어 버리는 책 따위는 용서되지 않는 안전 사회, 그것이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일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TV 시청 족에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 다. 무분별하게 넘쳐나는 가짜 정보, 특정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정보의 물길을 조종 하는 매체들에 휘둘리고 있는 우리 사고의 중심은 어떻게 잡을 것인가. 답답함 속에서 도 그 한 길이 책으로 이어져 있음은 분명하다. 

책이, 책이 전하는 가치가 목숨보다 소중 했던 시절을 회한어린 어조로 읊조리지 않기를,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우리의 근미래 에 바라본다. 

p.s. 몬태그와 인간도서관 무리는 살아남 을 것이다. 책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테니까.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