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주택 비율 높은 은평구, 하얀옥상만들기로 건물 효율화 추진 시급

아침 9시가 되지 않은 시간, 오전 10시부터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문자가 시끄러운 알람을 울린다. 그동안 도착한 폭염, 폭우경보를 알리는 문자를 세어보니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총 10건이나 된다. 이미 닥쳐온 기후위기를 경보 문자로 알리며, 물을 많이 마시고 한낮에 외부 작업을 피하라는 개인의 실천을 알린다. 하지만 노동현장에서 폭염발생 시 노동을 거부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외부보다 뜨거운 집 외에 살아갈 곳이 없는 개인에게 무의미한 문자알림일 뿐이다.

지난 6월, 서울시는 미국의 그린뉴딜 정책을 서울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제1회 서울에너지포럼을 진행했다. 그린뉴딜의 핵심정책 중 하나는 주택 및 건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는 일, 개인에게 냉난방을 줄이라며 죄책감을 들이미는 대신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많이 덥지 않고 춥지 않은 건물 효율을 높이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도 만들 수 있고 지방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 은평구는 에너지정책 전환을 위한 지방정부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24개 지역이 함께하고 있으며, 서울은 금천구, 노원구, 양천구, 성북구, 강동구와 함께 은평구도 에너지 분권 실현과 미세먼지·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행정부의 의지가 의지에서만 멈출 때 단체장의 치적과 홍보가 될 지언정 지역 주민들의 삶은 변화되지 않는다. 기후위기의 상황에도 구 차원의 실천과 사전적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폭염으로 은평구는 온열질환자 발생 지자체 5위에 해당하는 고위험지역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은평구의 주택현황과 연결된 통계라고 보인다. 서울시(17.8%)와 전국 통계(9.3%)와 비교해보아도 은평구는 다세대주택의 비율이 46.9%(2018년 은평통계연보)로 높다. 방수페인트가 칠해진 녹색옥상이 있는 다세대주택의 경우 뜨거운 열기를 흠뻑 머금어 실외보다 실내온도가 더 높다.  

은평구에는 기후변화 시대, 에너지전환과 주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서울특별시 은평구 에너지 기본 조례’가 이미 2016년에 제정되었다. 조례에 따르면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에너지이용 효율화 계획에서 건물의 에너지이용 합리화 및 온실가스배출 감축에 관한 사항을 다룰 수 있다. 이 조례와 계획을 자문하기 위해 15명 이내로 에너지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만 놀랍게도 계획수립도, 위원회 구성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난 7월 18일, 은평구 홈페이지 아이디어 게시판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은평구 하얀옥상 만들기’ 내용으로 정책제안을 했다. 게시물을 작성한 당일에 내년 2월에야 제안심사위원회에 상정된다는 아쉬운 답변이 달렸다. 

행정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년 예산을 편성할 시기인 7~8월을 넘겨 내년 초에야 논의를 시작한다는 은평구에서 온열질환자 발생 5위에 해당하는 지난해의 위기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답답하다. 

다행히 며칠 전 은평구는 ‘서울시 2019년 시민·기업 참여확대를 위한 자치구 온실가스 감축 특화사업’ 공모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3000만 원을 확보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려온다. 건물 옥상에 차열페인트를 칠한다는 내용으로 얼마 전 구청 아이디어 게시판에 올린 사업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이 지원 사업을 계기로 은평구가 제대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선도적인 지방자치단체가 되면 좋겠다. 시 예산만이 아니라 자체 예산도 편성하고, 이름만 있는 은평구 에너지기본조례도 활성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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