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도 보호자도, 치아도 빠뜨리지 않고 관리했으면

제가 일하는 치과 위에는 요양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 환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진료를 받기도 하는데 이 환자들을 만나는 일은 저를 더 성장하게 합니다.

대학치과병원에서 일할 때 만난 환자들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어도 대학병원까지 오는 수고를 감당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구강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제겐 부족했습니다. 살림의료사협에서 일하게 된 후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환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치아 원인으로 발생한 구강 외 누공(볼에 고름 구멍이 생기는 것)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인지증 환자가 있었습니다. 급한 염증은 종합병원에서 가라앉혀 왔고, 원인이 되는 치아 발치를 하기 위해 병원에 왔습니다.

마취할 때도 발치할 때도 얼마나 강력하게 저항하는지 진땀을 쏙 뺐었죠. 보호자는 응급실에 갔을 때 환자와 보호자가 고생한 것과 그 때의 위험을 떠올리며 문제가 있는 모든 치아를 발치하길 원했습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치아에 조금씩은 문제가 있었지만 환자가 치아로 씹어 먹는 식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저는 발치를 하는 걸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씹어 먹는 음식을 끊고, 콧줄 (코에서 위로 직접 연결되는 영양관) 연습을 해 왔으니 발치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치아 몇 개를 발치하는데 이번에는 힘이 없고 저항도 덜해서 편했습니다.

그렇지만 문득 슬펐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무엇이었을까, 식사 시간이 아니었을까? 지난 한 달 간 콧줄로만 식사하는 일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그것 때문에 저렇게 힘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살림의료사협 임직원들과 함께 일본 전민주의료기관연합회 소속의 노인요양기관에 견학을 갔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요양기관에 그 날의 식단표가 잘 보이는 곳에 정성스럽게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더해 한 달에 한번쯤 있는 계절 특별식에 대한 홍보물이 사진까지 첨부하여 벽에 게시되어있었습니다.

돌아와서 조합원 교육을 준비하다가 읽게 된 논문에는, 노인 요양 기관에 입소 중인 분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 식사이고 그 다음이 가족과의 만남이라는 놀라운 결과가 보고되어 있었습니다.

하루에 세 번 규칙적으로 맛있는 음식 냄새를 코로 맡고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고 치아로 씹어 먹는 일이, 세상과 만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분은 어떻게 지낼까 늘 마음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게 집에서의 식사는 그저 가사노동일 뿐이고 밖에서는 허기를 달래는 것 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치과의사면서도 사람들이 이 치아로 씹어 먹고 있다는 것과 단조로운 일상일수록 식사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가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전신상태가 좋지 않는 그 누구라도 식사가 주는 의미, 그래서 치아가 주는 의미가 크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들도 보호자들도, 그런 생각으로 치아도 빠뜨리지 말고 관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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