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마을마다 자작나무를 심어봅시다

자작나무는 '백범일지'에도 나왔던 나무이다.

미세먼지! 초겨울부터 이른 봄에 잠깐 찾아오는 기분 나쁜 불청객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겨울만 잘 넘기면 파란 하늘을 마음껏 되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불한당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알게 되면 그 이전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세먼지가 딱 그렇다. 세계보건기구에서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매년 미세먼지로 인해 전세계에서 700만 명이 조기 사망한다는 정보를 접한 이후,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임산부가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16% 증가한다는 이화여대 병원의 연구결과를 알게 된 이후 삶의 일부가 바뀌었다.

대기 중에 떠도는 고체나 액체의 작은 입자상물질로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mm) 이하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물질이 사람의 건강에 매우 나쁠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론, 심지어는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는 미세먼지가 내 머리 한쪽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미세먼지가 다방면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후로 야외활동을 대하는 태도 등 생활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창문을 열지 말지를 결정할 때마다 잠시 주저하면서 미세먼지 앱을 확인하는 나를 발견한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거리낌 없이 창문을 열었는데 말이다. 그땐 미세먼지가 지금보다 좋아서 그랬던 것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아니다. 객관적인 수치로만 보면 과거 10여 년 전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서울은 더 그렇다. 시민들의 인식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희한한 일이다. 그럼, 왜 우리는 미세먼지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고 온 몸으로 체감하고 절규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나의 경우는 마치 면역반응인 알레르기와 같다고 하겠다.

미세먼지는 의식적인 면역반응

나는 환삼덩굴 꽃가루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환삼덩굴이 꽃가루를 날리는 가을이 찾아오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재채기를 일상으로 하며 머리가 지끈거린다. 7년 전부터 겪어 오고 있는 고통이다. 환삼덩굴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습지주변을 무리하게 뚫고 지나가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꽃가루를 크게 흡입하였다.

그 이후 내 몸은 그 작디작은 환삼덩굴 꽃가루 1개마저도 감지하는 초정밀 관측기계가 되어 버렸다. 실은 꽃가루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미세먼지 실체 중 하나이긴 하다.

알레르기가 생체 면역체계의 문제로서 무조건적인 본능에 관계되는 반응이라 한다면 미세먼지는 의식적인 면역반응은 아닐까 생각했다. 한 번 형성된 의식의 면역반응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알게 되니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은,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내 사례 중 하나이다.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미세먼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평생을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매일 매일 미세먼지 앱을 들여다볼 것이고 먼 곳을 바라보며 하늘의 상태를 점검할 것이며 더운 날씨에 창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매번 고민할 것이다.

무엇하나 쉽게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하루하루가 우울할 것 같고, 때론 누적된 스트레스에 잘못된 방향으로 분노를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삶의 질이 나락으로 떨어질 게 분명해 보이고 난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 것이다.

하얀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

‘숲과 정원의 도시, 은평’을 선언해 보자

이대로 있을 순 없겠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디스토피아와 같은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면 무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젠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고작 생각해 낸 게 대중교통을 열심히 이용하는 거다.

근데 이건 평소에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거 아닌가? 도심 이곳저곳에서 진행되는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비산먼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니 몇 명 모여서 비산먼지감시단을 만들어볼까? 전기를 만드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미세먼지가 다량 방출된다고 하는데, 이참에 미니태양광을 달고 지역 에너지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에너지전환운동에 동참해볼까?

생각할수록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원도 바꿔야하고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우리네 욕심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탈성장’과 ‘전환도시’라는 뜬금없던 소리에 귀기울일 때가 되었다. 이게 말처럼 쉬울 순 없을 테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게 뻔한데 지금 당장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없냐고 한다면 도시 곳곳에 나무를 심어 보자!

나무가 미세먼지의 근본적인 발생을 억제해 주는 건 아니지만 발생한 미세먼지를 적절히 차단하거나 감소시키는 데는 큰 효과가 있음을 많은 연구가 밝히고 있다. 큰 나무 1그루당 35.7g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있다는데 이는 37.5g에 달하는 에스프레스 1잔과 비슷한 미세먼지 양이다.

은평구는 북한산 큰 숲이 있다지만 사람들의 삶터인 마을 안에는 숲과 나무가 부족하다. 누구의 말처럼 ‘북한산 큰 숲, 마을로 내려오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마을마다 나무 심기 운동’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좀 더 그럴싸하게 ‘숲과 정원의 도시, 은평’을 도시 비전으로 선언하고 모든 은평구민이 실천해보면 어떨까? 미세먼지 저감에 좋을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이것만큼 효과가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떤 나무를 심으면 좋을까? 미세먼지 저감에 특히 좋은 나무가 있다고 하던데, 나는 모든 나무가 좋다. 다만, 자작나무만큼은 주저된다. 하얀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가 미세먼지를 아주 싫어할 것 같아서이다. 흰 수피가 상징인데 미세먼지로 뒤범벅된 자작나무를 상상해보라. 자작나무 본인도 그렇겠지만 나도 싫다. 자작나무는 원래 추운 북쪽지방에서 자생하는 나무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구의 백범일지에서도 자작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함흥을 비롯한 지방에서는 ‘봇나무’라고 부른단다. 껍질로 지붕을 덮기도 하고 사람이 죽은 후 염습할 때도 봇껍질로 싼다고 하였다. 하얀 껍질에 기름기가 많아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하여 ‘자작나무’라 불렀단 설도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집단으로 하얗게 자라는 추운 북쪽지방 자작나무 숲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자작나무는 원래 도시보다는 이런 북쪽지방의 숲이 어울리는 나무다. 그러니 모든 나무가 좋지만 자작나무만큼은 통일된 후, 북쪽 지방에 심는 것으로 약속하며 식재 목록에서 제외해주자. 이제, 미세먼지 잡아먹는 나무 심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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