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이미지, 세계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 독립 후 세계의 거의 모든 전쟁과 내전에 발을 들여놓은 나라. 우리와 뗄 수 없는 애증이 얽힌 나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애환과 유색인의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는 나라. 광활한 대륙, 천혜의 비경, 무한한 자원, 민주와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는 나라. 언론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정도의 정의가 숨 쉬는 나라. 오늘날 미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2012년, LA인근 샌버나디노에서 차를 빌려 샌프란시스코까지 1박 2일을 다녀왔다. 북으로 갈 때는 고속도로, 내려올 때는 캘리포니아 1번국도. 큰 도시 주변의 고속도로는 유료이고 대부분의 고속도로는 무료다. 우리나라의 4, 6차선 지방도로와 비슷하다. 진출입이 자유롭고 톨게이트도 없다. 캘리포니아 주의 넓이만 해도 남한 면적의 네 배가 넘는다. 우리처럼 봉쇄된 고속도로가 아니다. 일반도로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나보다. LA~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주변, 그 넓은 땅에 방목하는 가축들이 끝없이 보인다. 가끔 나타나는 철조망이 없다면 그냥 들판에 노니는 모양새다.

캘리포니아~LA로 가는 1번 국도는 우리로 치자면 동해안 7번국도와 비슷하다. 오른쪽 태평양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왼쪽은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비롯한 해안산맥이 가로 막고 있어 빠져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길이다. 9백 km가 넘는 길이에 중간 중간 흘러내린 암석 제거 공사로 통행이 여유롭지도 않다. 혹여 기름이라도 떨어질까봐 노심초사 계기판을 보며 운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두워져도 가로등조차 없는 길, 캘리포니아 1번 국도다.

그런데, 왜, 이 길을 갈까? 풍광 때문이다. 백사장을 곁에 두기도 하고 까마득한 발밑으로 바다 위를 걷기도 하고 해무가 밀려오는 섬과 마을을 지나기도 한다. 해안을 따라 곳곳에 산책로가 있고 바다사자 서식지와 드넓은 태평양으로 저무는 노을도 장관이다. 호주에 골드 코스트 해변이 있는데, 이곳도 캘리포니아 골드 코스트로 불린다. 한때 미국 자유여행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여행코스. 샌프란시스코와 LA로 대표되는 문화와 교육, 예술과 영화의 두 도시와 함께 천혜의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사유지라 입장료를 받는 17마일 드라이브 코스, 산타 크루즈, 몬터레이 예술인 마을, 모로 베이, 산타 바바라, 말리부 등의 도시를 맛볼 수 있다. 

사진은 몬터레이 인근 페블 비치를 조금 지난 해안 풍경이다. 오전 11시쯤 강한 햇살에 올라 온 바다수증기가 차가운 육지와 만나 해무를 이루고 있다. 사진 중앙 왼쪽, 가늘고 희미하게 보이는 산 중턱 밑을 지나는 길이 1번 국도의 일부분이다. 1월인데도 따뜻한 해양성 기후 때문에 마치 여름날 같다. 위도가 높은데도 샌프란시스코는 반팔을 입을 정도이다.

LA공항은 이용객이 많아 옛날부터 입국심사 시간이 길었다. 911테러 이후 보안검색이 강화되어 시간은 더 늘었다. 2012년 당시에도 거의 두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통과하였다. 비자면제 국가이지만, 그냥 무비자도 아니다. ESTA라고, 전자입국허가서를 신청해야 하고, 수수료도 내야 한다. 초기에는 무료로 ESTA를 발급해주었으나 유료로 전환되었다. LA를 중심으로 Death Valley, Mojave 사막,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니언 등 다양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도 있다. 차를 빌리는 데 국제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하지 않는다. 자동차의 나라답게 응당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예약하지 않고도 도시 곳곳, 10만 원이하의 모텔과 여관을 찾을 수 있다. 단 너무 늦으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요주의! 미국이라는 국가가 보여주는 호불호를 떠나 한번쯤, 아메리카 원주민의 숨결이 담겨 있는 미국의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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