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긴 좁쌀을 보는 듯한 4월의 나무, 조팝나무

조팝나무는 4월 중순에 피어오른다. (편집자 주)

조팝나무는 우리 산하 어느 곳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키 작은 나무 중 하나다. 해마다 4월 중순이 되면 잔잔한 흰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데, 정말 멋있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문장력이라니!

멀리서 보면 꽃 핀 모양이 마치 튀긴 좁쌀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조밥나무’라 했다가 강하게 발음되는 조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좁쌀을 튀기면 흰색이 되는 건가? 조 이삭과 좁쌀은 하얀색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조라고 부르는 열매는 작고 둥글며 노란색을 띠는데 껍질을 벗긴 좁쌀 또한 노란색이다. 조팝나무의 흰 꽃 하고는 색이 다르다. 이것저것 사진을 비교해 보니, 오히려 좁쌀보다는 조의 이삭이 핀 모양이 조팝나무 꽃피는 모습과 닮아 보인다. 이런 연유로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홀로 생각해본다.

이름의 유래야 어떻든 ‘조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좁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은 있는지. 쌀, 보리, 기장, 콩과 함께 오곡에 드는 조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곡식이었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사람이 좀스러우면 ‘좁쌀영감’이라 하고 쩨쩨하다 싶으면 ‘좁쌀을 썰어 먹을 녀석’이라고도 했다는 그 ‘조’다.

'조'는 생육 기간이 짧고 건조에도 매우 강하므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흉년이 들었을 때 주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한때는 굶주림을 구제하는 구황식물이었으며 떡, 엿, 술을 만드는 원료로도 쓰였다. ‘조’ 때문에 살아남은 후손들도 꽤 있지 않을까 싶다. 고마운 식물이다.

조팝나무는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자라지만 생울타리로도 많이 심는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순은 뜯어다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다. 꽃은 향기가 진하고 꿀이 많다. 경기도에는 “조팝나무 꽃 필 때 콩을 심는다”는 말이 있다. 조팝나무 꽃이 피는 시절이 콩을 심기에 알맞은 때이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는 조팝나무를 ‘튀밥꽃’이라고 하고 싸래기꽃, 싸래기튀밥꽃이라고도 한단다.

조팝나무는 약으로 쓰임새가 아주 많다. 잎에는 조팝나무산(酸)이라는 해열과 진통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버드나무의 아세틸살리실산과 함께 진통제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진통제의 대명사 아스피린이란 이름은 아세틸살리실산의 ‘A'와 조팝나무의 속명인 스파이리어(Spirae)에서 ’Spir‘를 따고 당시 바이엘사의 제품명 끝에 공통적으로 쓰던 ’in'을 붙여서 만든 것이라 한다.

예부터 조팝나무의 뿌리를 상산(常山) 혹은 촉칠근(蜀漆根)이라 하였는데, 「동의보감」에는 “맛이 쓰며 맵고 독이 있다. 여러 가지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침을 토하게 하며 열이 오르내리는 것을 낫게 한다.”고 했다. 또 조팝나무의 새싹은 촉칠이라 하여 학질을 다루는 등 여러 가지 증상을 고치는데 썼다. 조팝나무 잎은 달여서 회충약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조팝나무는 씨앗을 뿌리거나 가지를 심거나 포기를 나눠서 기른다. 보통 가지를 심는데 두해가 지난 가지를 한 뼘쯤 잘라 물에 서너 시간 담가 두었다가 묻는다. 가지를 꺾어서 묻어 두면 금세 큰 포기로 자란다. 추위에 잘 견디고, 메마른 곳보다는 축축한 곳을 더 좋아한다.

조팝나무속의 학명은 스피라에아(Spiraea)인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나선(螺線)’ 또는 ‘화환(花環)’이란 뜻의 ‘스페이라(Speira)'에서 유래하였다. 실제로 조팝나무속 식물로 화환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열매의 모양이 나선상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수선국이라고 부르는데 이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수선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소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아버지는 징집되어 나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적국의 포로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기다리다 못한 수선은 아버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였고 남자로 변장하고 적국으로 가서는 갖은 고생 끝에 감옥을 지키는 옥리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포로를 가두어 두는 옥에서도 아버지를 찾을 길이 없었다. 수소문하여 보니 아버지는 포로로 잡혔다가 얼마 전 옥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슬픔이 북받친 수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버지를 부르며 울었고 이 때문에 모두 수선이 적국의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수선의 효성이 적군의 마음을 움직여 수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의 무덤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캐어 와서는 아버지를 모시듯 정성껏 가꾸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이듬해 아름다운 꽃을 피웠고 사람들은 이 꽃을 가리켜 수선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팝나무는 공원이라면 어디에서든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나무이다. 북한산성을 가기 위해 흥국사를 지나는 길에서 보았다.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에서 느끼는 감흥도 잠깐! 올 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라는 기상예보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4월 중순인데 벌써 여름인가? 올 여름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 걱정된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며 기후변화를 염려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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