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나이만큼 같이 산 은평

2018년 아마들과 여행한 고창갯벌에서 아이들이 조개를 줍고 있다.

신랑이 자취하려고 마련해 둔 역촌동 집은 결혼하면서 신혼집이 되어 8년을 살았고 우리 부부는 학생 때 집과 학교가 멀어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아이만큼은 학교가 가까우면 좋겠다며 아이 학교 바로 앞으로 이사해 지금은 구산동 주민이 되었다. 은평구에 산 기간은, 우리아이 나이와 같은 10년이 되었다.

은평에서 살게 된 계기는 아이 때문이다. 맞벌이 때문에 친정집이 있는 김포로 이사를 해서 부모님께 육아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생각보다 일찍 회사에 복직하게 되어 아이가 18개월 쯤 되었을 때 어린이집을 알아보다 소리나는어린이집을 만났다.

내 첫 협동조합은 소리나는어린이집이다. 내가 처음 느낀 협동조합은 ‘이상한 조직’이었다. 끊임없는 관심과 이야기, 아이와 함께 10명~20명까지의 마실(이웃집에 놀러가는 것),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밤늦게 까지 회의와 다툼 등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신랑에게 탈퇴하자고 했는데 신랑은 이미 이 조직이 너무 이상하고 신기하다고 탈퇴할 수 없다고 했다. 나와는 다른 이상하고 신기함 이었나 보다.

5년 동안 소리나는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도 많고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 질 때도 있고 아이 키우는 방식이 달라서 힘든 때도 있었다. 이렇게 각자의 다름을 가지고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들을 잘 풀어 나가고 들어주고 협의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족은 타인을 배려하는 것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나의 인생 전환점인 소리나는어린이집에 감사하며 아마들(아빠와 엄마들), 교사들, 아이들 덕에 우리 가족은 졸업할 수 있었다.

아마들과 여행한 고창 갯벌.

우리가족이 은평에서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이다.

아이가 4살 무렵 폐렴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살림에서 폐렴진단을 받고 더 심해지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한다고 이야기 해주었고 무영 선생님이 소견서 작성해주면서 응급실에 가게 되면 가지고 가라했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감사한 마음에 병원으로 케이크를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실수를 했나 싶기도 하다. 살림이 이제 막 생겼을 때였는데 감사한 마음을 후원금으로 보냈어야 했구나 싶다.

아이가 8살 될 무렵 독감예방접종을 맞으며 ‘내가 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징징 거리 길래 ‘전문가인 무영한테 물어보자’고 했다. 친절하게 대답해준 무영 선생님. 고개만 끄덕하고 ‘하지만 오늘은 주사를 맞지 않겠다.’며 나온 우리 아이, 진상 조합원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무영은 이해한다며 다음번에 만나자고 했고 그 다음 주에 주사를 잘 맞고 왔다. 우리가족은 늘 살림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은평구와 꽤 오랜 인연이다. 20대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가 진관외동에 살아서 연신내에서 자주 만났다. 당시에 같은 회사에 다니던 언니가 “희영인 요즘 어디서 노니?”라는 질문에 ‘연신내’라고 대답했다. 언니는 갑자기 ‘풉’하고 웃으며 ‘연신내는 노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지역폄하에요. 사과하세요” 라고 말했을 거다. 누군가 “수선화 요즘 어디서 놀아?” 물어본다면 “은평구 전역이요~” 하고 말할 거다. 은평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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