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서울집중-중앙집권부터 고쳐야

 

한국의 정당법을 보면, 놀라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정당의 중앙당은 수도에 둬야 한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이 어떻게 해서 정당법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62년 12월 31일 최초 제정된 ‘정당법’ 제3조에서부터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한마디로 ‘정치의 분권’이라든지 지역정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정당법이 최초 제정된 시절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화가 진행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이 조항은 그대로 남아 있다.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조항에 대해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탓일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 원내 정당의 중앙당은 서울 여의도와 그 부근 일대에 몰려 있다. 정당의 중앙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도 실제로 거주하는 곳은 서울인 경우가 많다. 이런 정당과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정당의 중앙당은 서울에 두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왜 정당의 중앙당이 서울에만 있어야 할까? 심지어 경기도에도 둘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태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당이라면, 정당의 중앙당을 농촌지역에 둘 수도 있고,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중시하는 정당이라면 비수도권 지역에 정당의 중앙당을 두는 것이 그 정당의 정체성에 더 맞을 것이다. 

이것은 한 가지 예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서울중심주의, 중앙집권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정치의 서울집중, 중앙집권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사람과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수도권은 집값이 오르고 장시간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 비수도권은 사람과 자원이 빠져나가서 문제가 된다. 

중앙집권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서울과 세종시에 앉아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이 지역의 현실을 일일이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탁상행정, 책상물림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런데 중앙정부가 입법도 하고 예산도 쥐고 있으니 지방자치단체들은 현실에 잘 안 맞는 정책인 걸 알더라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치는 이런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실제로는 그 지역에 제대로 거주도 하지 않으면서 지역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중앙집권적인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다. ‘중앙부처에서 예산 얼마 따왔다’고 생색내는 방식으로 지역을 관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에서는 분권과 자치라는 단어가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 국가 중에서 지방분권과 지역자치가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가 없다. 모두가 서울만 바라보고 있고 중앙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는 어렵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팍팍하고 불안정한 삶의 원인중 하나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정치를 분권화하고 지역정치를 살려야 한다. 당장 정당의 중앙당은 수도에 두도록 한 정당법 조항부터 없애야 한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는 이 조항의 문제점으로 “모든 정당으로 하여금 수도를 기점으로 정치활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막고, 정당이 지역을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저해”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더 나아가면 각 지역의 주민들이 ‘지역정당(주민정당)’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하다. ‘지역정당(주민정당)’은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지역정치조직이다. 대부분의 정치선진국에서는 지역정당이 인정된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많은 지역정당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지역주의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그럴 우려는 없다. 각 정치세력이 얻은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면 지역감정에 기대는 정치세력이 큰 힘을 얻기는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유권자들은 결국 그 정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의 서울중심-중앙집권적 구조부터 해체하는 것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함께 지역정당(주민정당)을 인정하고 있다. 

그 시작으로 말도 안 되는 ‘정당의 중앙당은 수도에 둬야 한다’는 조항부터 없앨 필요가 있다. 정당조차도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만든 이상한 법조항은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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