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의 '멋있는 식물원', 서울식물원의 모습. (사진제공: 서울특별시)

중국 탓이요 우리 때문이요 아웅다웅하는 사이에 봄이 훌쩍 와 버렸다. 볼 일이 있어 동국대학교 교정을 걷다 보니 분홍빛 진달래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 들어 처음 맞이하는 봄꽃이다. 말 그대로 활짝 피었다. 가까이 남산이 있어 추울법한데도 주변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인지라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가 보다. 북한산이 가까운 은평구 외곽, 우리 동네는 아직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미묘한 환경의 차이일지라도 평생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에게는 큰 영향인자일 것이다. 식물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일 수 있겠다. 진달래가 꽃을 피우니 다른 꽃들도 이에 질세라 꽃을 피웠나 보다. 노란 산수유 꽃도 보이고 하얀 매화꽃도 보인다. 벌써 꽃망울이 터진 백목련도 있다. 머나먼 남쪽지방 산수유마을엔 한참 전부터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하고, 벚꽃이 너무 일찍 피어 벚꽃축제를 당기느니 마느니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단 소식도 들었는데 그 봄꽃소식이 이제야 서울에 도착했나 보다.

이제 좀 있으면 꽃들의 향연! 꽃들의 향연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으면 숲에 가면 된다. 아니, 숲보단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더 좋겠다. 환경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후 자연 상태라면 보기 힘든 식물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 식물원이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규모가 제법 되는 식물원과 수목원이 있다. 구로구 항동에 가면 푸른수목원이 있다. 서울의 서남쪽 구로구 끝자락에 위치한 서울시 최초로 조성된 시립수목원이다. 면적이 3만평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푸른수목원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좀 더 가까운 곳에 멋있는 식물원이 하나 더 있다. 강서구 마곡동 50만4천㎡(15만여평) 너른 벌판에 조성한 서울식물원이다. 축구장 약 70배의 크기란다. 세계 12개 도시의 식물과 식물문화를 소개하고 도시인의 생태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작년 온실과 일부 주제원을 개방한 후 올해 5월에 완전 개장한다고 한다. 가보니 지금 한창 개장 준비 중이다.

아! 갑자기 배가 아프다. 구로구와 강서구가 한없이 부럽다. 생각해보니 성동구 성수동에는 서울숲이 있다. 이곳은 더 넓다. 1,156,498㎡(약 35만평)이다. 옛날 경마장과 골프장으로 쓰이던 넓은 개활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강북구에는 66만여㎡에 달하는 북서울꿈의숲이 있다. 북한산을 공유하는 도봉구에도 5만3천여㎡(1만6천여평)에 달하는 창포원이란 널따란 공원이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네. 인근 마포구엔 자그마치 100여만평에 이르는 월드컵공원이 있지 않은가. 다른 동네 말고 우리 은평구에는 그런 공원 없나? 경사진 산 속 숲이 아닌, 평평한 지형에 조성된 공원 말이다. 아, 우리 은평구에도 있긴 있다. 공원! 6,100여㎡(약 1,800평)에 이르는 은평평화공원과 약 700평 규모의 연신내 물빛공원!

‘북한산 큰 숲, 사람의 마을 은평’, ‘북한산 큰 숲, 내일을 여는 은평’ 하면서 북한산 큰 숲을 자랑하지만 정작 북한산이란 큰 숲이 외곽에 위치하고 있고, 사람이 사는 동네에는 숲다운 숲, 공원다운 공원이 없는 게 참으로 아쉽다. 북한산 큰 숲이 마을 곳곳으로 내려와 온 마을을 감싸는 숲 속 마을을 꿈꿔볼 순 없을까? 그런 꿈을 실제로 실현해 볼 순 없을까? 산림청은 ‘숲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서울시는 ‘숲과 정원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난리인데, 우리도 ‘북한산 큰 숲, 숲과 정원 마을공동체 은평’을 상상해보면 안될까? 거대도시 런던은 아예 도시를 ‘국립공원 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단다.

우리 은평구도 한때 축구장 16배 면적 정도 되는 113,000여㎡(3만4천여평) 넓이의 공원을 가져볼 기회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은평뉴타운 개발 당시 진관사 인근 넓은 개활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SH공사는 그 노른자 땅을 택지 개발하여 분양할 생각이었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을 비롯한 일부 단체와 사람들이 개발하지 말고 그곳에 공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북한산 능선이 아름답게 보이는 경이로운 경관을 일부 여유로운 사람들의 전유물로 만드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모두의 것을 모두가 누리고 향유할 수 있도록 ‘북한산경관생태공원’을 조성해보자고 했다. 지나가는 개가 짖는 꼴이었다. 개발의 상식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곳을 공원으로 만들기에는 SH공사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지금 그곳은 한옥과 양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한옥특화공간으로 변했다. 나로선 여전히 안타까운 과거지사다.

여하튼 우리 동네 은평구에는 산을 제외한 평지형 공원이 너무 부족하다.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까? 녹지는 풍부한데 생활주변에 공원다운 공원이 없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에 가볍게 놀러나 갈 공간이 별로 없다. 그러니 나들이를 가려면 이웃 동네를 기웃거릴 수밖에.

월드컵공원을 너무 자주 가 싫증나신 분들이라면 좀 더 시간을 들여 이번 5월 달에 전면 개장할 서울식물원에 들러보면 좋겠다. 멀게 느껴지지만 전철로 30~40분 거리다. 서울식물원을 둘러보며 마음껏 부러워하자. 우리 동네에도 이런 공원 하나 있었으면 마음모아 빌어보자. 그 힘이 모여 정말 그런 공원 하나 언젠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런 공원 만들 넓은 빈터가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요?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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