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전화기 한 대 놓고 시작한
여성인권운동 단체 ‘한국여성의전화’

여성폭력 신고 시 가부장적 성역할 
강조하는 경찰 대응 바뀌어야

부족한 여성정책 채우는 고민 없이
담당부서 없애는 모습은 아쉬워

3.8세계여성대회에 참여한 한국여성의전화 회원들 (사진: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아내구타 등 여성폭력문제 전문 상담전화를 개통하고 상담원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기혼여성 7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2%의 여성이 맞은 일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여성주의 상담, 베틀여성모임, 쉼터 개소, 법제정 운동, 여성인권영화제, 가정폭력근절을 위한 움직이는 지역사회 네트워킹 모델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등 여성폭력이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와 성차별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리는데 더 힘을 쏟고 있다. 

은평시민신문은 3.8 여성대회를 마친 다음날, 녹번동에 자리 잡은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아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 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전 3.8 여성대회가 있었는데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희망을 전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좌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로 가기위한 길이라는 기대를 담아 노란 장미를 나누었다. 많은 여성들이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이 때론 생존권과 연결될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용기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3.8 여성대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미세먼지보다도 심각한 ‘먼지차별’ 이야기도 했다. ‘먼지차별’은 일상에서 성별, 나이, 인종 등으로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을 말한다. 

올해 한국여성의전화가 어떤 활동이 펼칠지 기대된다.

작년에 미투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여성폭력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냈다. 이번엔 우리 사회가 이 목소리에 대답할 차례라고 본다. 어떻게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실제 사회가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인권지원활동으로 성폭력피해 소멸시효 등 성폭력 피해자들의 배상권 문제, 수사재판과정에서 입는 2차 피해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여성폭력 인식변화를 위한 캠페인으로 ‘그런 가족은 필요없다’, ‘먼지차별 근절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상시적으로 대중교육활동, 여성인권영화제, 여성폭력피해자 지원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작년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개념과 국가의 책무를 명문화하고 여성폭력근절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여성폭력근절기본법(가칭) 마련을 요구해왔고,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여 올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회 법안 논의 과정에서 입법 취지가 후퇴하고, 현장단체가 요구하는 핵심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한 한계가 있어 앞으로의 대응활동이 필요하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배상권 문제라는 건 어떤 것인지?

성폭력 피해자들이 배상권을 얘기하는 순간 꽃뱀이라는 프레임이 갇히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여성들이 민사소송에서 배상을 요구하면 결국 돈 때문이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형사재판으로 가게 되는데 배상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를 보상받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수사재판과정에서 2차 피해란 무엇인가?

2년 전에 ‘경찰이라니 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는데 많은 시민들이 공감하고 함께 해줬다. 여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신고하면 출동하는 사람이 경찰이다. 그런데 뭘 이런걸 갖고 신고하냐, 참고 살아라, 남편한테 잘해라 등 여전히 가부장적 성역할을 강조하는 태도가 심각하다. 올해는 피해자들과 직접 사건을 통해서 같이 대응하고 싸우며 필요하면 검찰과 경찰을 고발하고 국가책임도 좀 더 적극적으로 묻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 소장 (사진: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피해 소멸시효는 몇 년인가?

현행 민법상 10년이다. 만약 9살에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10년이 지나도 아직 미성년자이고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물을 만큼 힘을 가지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피해가 오래 지속되거나 피해가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 등이 있는 만큼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이해를 담은 소멸시효 기산점을 담은 판례를 만드는 활동을 계획 중이다. 

과거에 비해 여성폭력이 좀 줄어들지 않았나?  

가정폭력 상담통계가 3월 7일 발표됐다. 발표 내용을 보면 피해자가 경험한 폭력은 하나의 유형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다층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94%에 이르는 걸 알 수 있다. 가정폭력피해 사례 중 80%는 아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고 공권력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 가정폭력이 일어나서 경찰에 신고하면 뭘 이런 거 갖고 신고하냐며 가부장적 성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정책도 있고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경찰출동 단계에서부터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게 많다. 

은평구가 다른 구에 비해서 가정폭력신고가 좀 많은 편이라고 한다. 지역특성상 주거지여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은 파악해봐야겠지만 경찰의 1차 대응 등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여성의전화’하면 가정폭력 상담활동이 떠오른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전화기 한 대 놓고 가정폭력 문제를 상담하기 시작했고 상담을 하다 보니 제도화의 필요성을 느껴서 법 제정 운동에 나섰다.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가정폭력, 성폭력법이 따로 제정됐고 그 법에 의해서 상담소도 분류돼 운영됐는데 작년부터 가정폭력상담과 성폭력상담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여성인권상담소로 운영하고 있다. 

가해자들의 행동을 교정해서 가정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는 상담이 아니라 가정폭력의 문제를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지원하고 해결하고 정부에 정책제안도 하는 등 피해자를 더 잘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담소들이 연대하고 활동하려고 한다. 그런 취지를 담아 3월 7일 ‘여성인권실현을 위한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가 출범했다.  

은평구의 여성정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선7기에 조직개편하면서 여성정책과를 가족정책과로 바꿨다고 들었다. 기존의 은평구 여성정책들도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워 나갈까하는 고민이 아니라 그냥 바꾸고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간의 정책도 여성을 주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들, 여성안심귀갓길, 여성안심택배 등에 그쳐 아쉬웠다. 

여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이 일어나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 가족을 유지시키는 방식으로 바라보면 정책도 그 관점에서 집행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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