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 봄을 마주하는 개나리

개나리 하면 바로 연상되는 게 바로 이 노란 꽃이다. 아무리 나무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노란색이 한창인 개나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 서울특별시)

이태수라는 화가가 있다. 세밀화를 그린다. 보리출판사에서 다양한 세밀화도감과 생태그림책을 펴냈다. 우리나라 자연 생명을 종류 가리지 않고 그림으로 담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자연에게 말을 걸 듯 따뜻하고 푸근한 감성이 있는 그림을 그린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오래 전 파주출판단지에서 ‘이태수 그림전’이 있었다. 평소에 그의 그림을 좋아했던 터라 주저 없이 전시회에 들렸다. 역시나 좋았다. 모든 그림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욕심 같아선 모든 그림을 사서 집 거실에 걸어 두고 싶었다. 그것도 허황된 욕심인지라 작품 하나만 구입하는 것으로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혔다. 원화가 아닌 복사품인지라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이 그런 결정이라도 내리게 했으리라.

마음 밑바닥에 꼭꼭 숨어 있던 유년 시절 감성이 되살아나고

수십 개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끌리는 작품이 이미 있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어느 촌부의 산자락 텃밭에 찾아 온 봄!’ 정도 될까?

어느 깊은 산골 자락에 그리 크지 않은 텃밭이 있다. 추운 겨울을 지나 이제 막 봄이 시작된 즈음으로 보인다. 밭을 개간하며 나온 크고 작은 돌멩이로 텃밭 주위에 돌담을 쌓아 놓았다. 아니, 돌담보단 돌무더기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꽤 흐른 듯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돌무더기 바로 너머로 매화나무 한 그루와 개나리 무리가 자리 잡고 있다. 매화나무와 개나리 사이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 더 서 있는데 어떤 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갯버들이나 조팝나무 같기도 한데 확실하진 않다.

매화나무는 이미 꽃이 한창이고 개나리 또한 그렇다. 개나리의 노란색이 도드라져 보인다. 따뜻한 느낌이다. 겨우내 꽁꽁 얼어 있던 텃밭의 흙들도 이제 부드러워 보이며 여기 저기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그 그림 앞에서 한참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이었을까? 내 발을 한참 붙들었던 그 힘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엔 몸의 변화가 미묘하게 일어난다. 환경이 변화하는 걸 몸이 느끼고 그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온 몸이 나른하다. 적당히 따뜻한 햇볕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툇마루에 앉아 봄이 오는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주변은 고요하고 세상은 더없이 평화롭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졸음이 쏟아진다. 눈꺼풀이 무거워 자꾸 눈이 감긴다. 그렇게 한나절 해가 넘어간다. 이런 느낌이랄까?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잃어버렸던, 마음 밑바닥에 꼭꼭 숨어 있었던 유년 시절 감성이 그림 때문에 되살아났던 모양이다. 에라 모르겠다, 30여만 원 주고 구입한 그림은 지금 내 방 벽에 걸려 있다.

노랑에 마음 뺏긴 사람들은 이파리에 눈길을 주지 않고

그림 속 백미는 샛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다. 개나리 하면 바로 연상되는 게 바로 이 노란 꽃이다. 아무리 나무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노란색이 한창인 개나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 사는 주변에는 흔하디흔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노란 꽃이 지고 나면 개나리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꽃이 진 후 초록색 잎들이 나무를 물들인다. 잎도 정갈하고 귀엽게 생겼다. 하지만 노랑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은 이파리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세히 보지 않았으니 잎만이 가득하거나 잎마저 지고 가지만 무성한 개나리를 알아볼 리 없다. 꽃이 피지 않은 개나리는 그래서 섭섭하다. 개나리로선 섭섭한 마음을 넘어 사람들이 속물로 보일 법 하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는 도시인들이 어쩜 안쓰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개나리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난, 여전히 개나리라고요, 노란 꽃이 피든, 지든. 제발 언제든 알아봐주세요.”

연교(連翹)라 불리는 개나리 열매는 오래전부터 귀한 약재로 쓰이기도 해

개나리란 이름은 개와 나리의 합성어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나리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보다 작고 좋지 않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닐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에서는 개나리꽃나무라고 부른단다.

개나리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한국에서만 나는 식물이란 뜻이다. 우리에겐 너무 흔하지만 지구라는 차원에서 보면 귀하디귀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는 골든벨(Golden bell)이라 부른다.

개나리꽃은 모두 같아 보여도 아주 드물지만 암꽃과 수꽃 두 가지가 있다. 꽃잎은 네 갈로 갈라져 있고 그 속에 두 개의 수술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윗부분의 꽃밥은 서로 뭉쳐 있다. 암술은 거의 퇴화되어 수술 틈에 수술보다 더 조그맣게 한 개가 나있는데 제 구실을 못한다. 이런 꽃이 바로 수꽃이며 우리 주변에 대부분 이런 수꽃들만 있다.

아주 드물지만 때때로 가운에 있는 암술이 발달하여 수술보다 더 높게 솟아난 꽃이 있는데 바로 암꽃이다. 수꽃의 꽃가루가 바로 이렇게 생긴 암꽃의 암술머리에 닿아야만 비로소 씨앗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주변 개나리에서 열매를 보기가 힘들다.

개나리의 열매는 오래전부터 연교(連翹)라 하여 한약재로 쓰였다. 종기의 고름을 빼고 통증을 멎게 하거나 살충 및 이뇨작용을 하는 내복약으로 썼다. 조선시대에 임금님께 올리는 탕제로 처방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귀한 약재였음을 알 수 있다. 열매가 잘 열리지 않는데 우리 주변에 개나리가 흔한 건 어떤 이유인가? 개나리는 꺾꽂이, 휘묻이와 같은 방식으로 번식을 할 수 있다. 가지를 꺾어다 꽂아 놓기만 해도 쉽게 뿌리를 내린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개나리 식구들은 개나리를 비롯하여 산개나리, 만리화, 장수만리화, 의성개나리 등이 있다. 산개나리는 북한산에서 최초 발견되었다. 북한산 큰 숲은 개나리에게도 큰 숲이겠다 싶다. 저 멀리 개나리를 필두로 꽃피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봄맞이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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