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대성당 내부 천정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은 마무리까지 거의 450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오래 된 부분은 보수하느라 공사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한 여름인데도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높은 천정을 배경으로 쏟아져 내리는 찬 기운이 압도하는 힘, 바로 신앙의 힘이었다.

생각컨데 옆에 있는 누군가가 같이 기도하자고 말을 걸었다면 나는 그 때 기꺼이 동참했을지도 모르겠다. 종교 건물에 들어서서 경건함을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15년 뒤, 200여 년 동안 건축 중인 또 다른 성당을 찾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동쪽의 4개 탑 형식의 건물은 예수의 탄생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사찰의 탱화처럼 상하좌우 수많은 조각상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에 보이는 검은 부분 중 맨 왼쪽만 가우디 생전에 완결하였단다. 동쪽의 조각상은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어 이 성당도 역시나 반복적인 보수 공사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서쪽은 예수의 수난을 테마로 지금도 공사 중인데 동쪽과 달리 피카소의 추상인물을 보는 듯한 조각상들이 보인다. 극명한 대비. 서쪽은 해질녘 강한 햇빛이 실내 깊숙이 들어와 성당 내부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자연광, 그리고 현대미를 더한 전등은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면서 돔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 벽면에 환상적인 빛을 선사한다.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를 기억하고 해마다 수백만 명이 신앙이든, 관광이든, 또는 건축학이든 외경심을 갖고 찾는 곳. 그러나 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일별하면서 아메리카 인디오를 생각했다. 밀라노 두오모에서 가졌던 경건함 대신 제국 스페인의 영광을 위해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고 이곳까지 끌려왔을 그 흔적을 생각했다. 물론 15년의 세월 동안 남미를 다녀보았고, 제국과 식민의 역사를 생생하게 경험한 탓인지도 모른다.

스페인은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 지브롤터 해협을 지척에 두고 있어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뒤섞인 곳이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 거기에 아메리카의 인디오까지 다양한 인종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들의 겉모습만으로는 ‘유럽’이 잘 느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동북단 끝이면서 독립까지 추구할 정도로 일반적인 스페인과 다른 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역시 식민지 수탈과 연관을 맺으면서 발전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웠다. 생의 중후반 전부를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매달린 가우디의 열정과 신앙심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 거룩한 종교적 건축물은 그 거대하고 치밀한 계획 어느 한 곳에도 왜 인디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지(있는데도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성당 내외부를 둘러보면서 내가 잃어버린 경건함은 무엇 때문인지 질문만 가득했다.

서쪽 출입구 쪽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설계도와 모형과 공법들을 자세하게, 입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동편에 새긴 사실적인 조형, 서편에 새긴 추상적인 조형을 한 가우디의 얼굴상도 많은 관광객이 둘러싸고 있다. 다시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콜롯세움 하나 만으로 수많은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이탈리아 선조의 지혜. 사그라 파밀리아도 이처럼 앞으로도 계속 스페인 후손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줄지 모르겠다. 물론 신앙과 천재성이 중추라는 것은 명약관화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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