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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은 나의 핏줄
  • 박정원
  • 승인 2019.01.0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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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0_잔치

박정원 씨는 은평구에서만 24년을 산 은평구 토박이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 은평구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현재도 살고 있으니 평생을 은평과 함께하고 있는 진정한 토박이인 셈이다.

"할아버지의 육 남매, 저까지 모두 수색초등학교 졸업생" (1995)

할아버지께서 황해도에서 일제시대 때 기관사로 일하셨는데 기관사 사택이 수색동에 있었대요. 그때부터 수색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수색에 일제 흔적들이 남아 있었는데요. 재개발 6구역 사무소가 생긴 자리에 일본 간판이 있었어요. 먼 옛날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저 역시 너무 신기해요. 할아버지는 3남 3녀를 두셨고, 육 남매 모두가 수색초등학교를 졸업하셨어요. 큰아버지는 20회, 아버지는 30회, 작은아버지 33회 졸업생입니다. 저는 71회 졸업생이고요. 조카도 수색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재개발 때문에 이사 갔어요. 3대가 수색초등학교를 다니는 경우가 흔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친인척이 모일 때마다 "나는 몇 회 졸업생이다"하며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돼요. 이 정도면 은평을 '나의 핏줄'이라는 표현이 과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보다 더 오래 사신 분들도 많겠지만, 저는 모태 은평인인 셈이죠.

1990년대, 수색동 삼거리 수퍼

"수색동 골목골목이 어린 시절 저의 놀이터였어요" (2002-2003)
골목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된장찌개 냄새가 맴돌던 골목. 집 앞 골목에서 "누구야!"라고 부르면 같이 놀고 있던 친구랑 저녁 먹으러 가곤 했어요. 약속한 것도 아닌데, 약속한 것처럼 저녁 먹고 다시 나와서 뛰놀곤 했어요. 골목에 대한 또 하나의 추억은 두부 아저씨의 종소리예요. 아저씨의 종소리가 골목 끝에서 들리면 모두가 곧 헤어져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걸 알아챘거든요. 딱 그 시간이 집에서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할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두부 아저씨 종소리는 귀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비 종소리 같은 거였고, 된장찌개 냄새는 곧 엄마가 부르겠다는 진짜 귀가를 알리는 아쉬움의 종소리였어요. 두부 심부름도 많이 다녔고요. 아직도 뛰놀던 골목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가끔 그땐 그랬지 하며 추억해요.

2011년, 수색동 100개 계단

 

"서울에서 골목 보물 찾기" (2011)

제가 고등학교 때,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저희 동네에 많이 오더라고요. 그때는 남의 집을 '왜 찍지'라는 불편한 감정이 있었는데, 사진 공부를 시작하고 동네 사진을 찍으면서부터는 이해가 좀 되더라고요. 서울에 골목이 남아있는 곳이 많지 않잖아요. 평생을 이 동네에 살았지만, 저도 골목을 찍으면서 발견하는 진풍경들이 있거든요. 이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더 그렇게 느낄 것 같아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은 서울에서 골목 보물 찾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방앗간 같은 공간" (~2018)

3대가 수색에 살아서 가까이에 친척들이 있어요. 그리고 은평이 오르막 지형에 골목이 많은 동네라 골목 위쪽에 살면 아랫집들을 다 지나칠 수밖에 없거든요. 그 아랫집에 사촌 언니가 살았어요. 오르막길 오르다가 힘들거나 심심하면 놀러 가고, 비 오면 우산 빌리러 가고, 가족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이는 장소였어요. 방앗간 같은 곳이에요. 꼭 친인척이 아니어도 골목 첫 번째 집에서부터 꼭대기 집들 사이에 꼭 방앗간 같은 이웃사촌집이 있는 것 같아요. 아랫집 윗집이 친척이고 이웃사촌이고 그런지 정이 많아요. 최근에 재개발로 많이들 이사를 가는 바람에 방앗간 같은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쉬워요. 개발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방앗간 같은 곳이 없을까 걱정되기도 해요.

박정원 씨

"앞으로 기회가 많은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20대가 되어서 은평구에서 마을 활동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활동가분들 덕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은평구의 움직임을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자발적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고요. 똘똘 뭉칠 줄 아는 힘이 있는 동네라는 것에 자부심도 느끼고요.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이런 힘이 재개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청년, 중년, 노년이 같이 어울리면서 은평만의 색깔을 잃지 않은 영원한 우리 동네였으면 좋겠어요.

 

 

 

 

지역문화는 수많은 이들의 삶이 얽혀 만들어진다. 그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은 은평생활사를 증언하는 자료집이 된다. <은평, 담소전>은 지역주민의 사진을 통해 은평생활사를 들여다보는 자리로 후원 서울문화재단, 주최 은평문화재단, 주관 은평문화재단, 반짝반짝사진방에서 진행한 지역문화기록사업이다.

박정원  epnews@e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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