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세계인권선언 70주년이다. 유엔은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고 세계인권의 날로 삼아왔다. 유엔이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한 것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모든 인간의 존엄을 확인하기 위한 선언이었다. 인간이 어떤 인간에게는 무차별한 학살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표명이었다.

그 즈음 한국의 남쪽은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바로 직전 프랑스에서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소위 혁명의 나라라고 불리던 프랑스에서도 같은 인간의 절반에게 투표권이 한참이나 없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통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선언했다. 그 때의 모든 인간은 모든 남자인간을 지칭했다. 모든 남자 인간조차도 명예와 신분에 따라 투표권이 차등으로 부여되었다. 그리고 혁명을 통해 모든 남자 인간에게는 1인 1표의 선거권, 참정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모든 여자와 어린이 청소년은 아직 그 인간에 속하지 않았다. 함께 혁명에 참여했던 여성들 중, 올랭 드 구즈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리고 모든 여자 인간도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곧 바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사형의 이유는 ‘여자답지 않은 여자’라는 죄목이었다.

프랑스에서 여성들은 인간이 아닌 범주에서 인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 불과 70년에 겨우 넘었다. 미국에서 흑인, 흑인 여성이 인간의 범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100년이 안 되었다. 같은 버스요금을 내면서도 백인이 앉을 자리에 흑인은 앉아서는 안 되던 인간의 경계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 퇴진 촛불시민혁명 이후 청소년의 참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17년 5월 대선과 2018년 6월 지방 선거에서 청소년의 정당활동 보장과 선거연령 하향 등의 요구도 높아졌다. 그런데 한국은 OECD국가 중 유일하게 만19세 선거원이라는 장벽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청소년의회와 학생참여예산제, 아동친화도시 등을 추진해나가면서 청소년의 정치와 지방정부의 정책참여 확대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것이 실질적이기 위해서 우리가 청소년을 미래의 시민이 아닌 현재를 함께 사는 시민으로 존중하고 대접하는 사회로서 만들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촛불혁명에 함께 했지만 그 결과에서 무권리 상태로 배제당하는 청소년은 프랑스혁명에 함께 했지만 그 결과에서 인간 이하, 안 보이는 존재로 배제 당했던 250년 전 여성과 같은 처지에 있다. 장자크 루소의 에밀은 근대사회의 민주시민교육의 상징이며 아동을 존중하는 가치를 담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에밀이라는 남자아이는 주체로 대우했지만 에밀의 여자친구인 소피에게는 에밀을 어떻게 내조할지에 대한 제시만 있을 뿐 소피에 대한 존엄한 대우는 부재했다.

누스바움은 역량이론을 통해서 모든 시민의 존엄성은 동등하며 모든 핵심역량도 동등해야 한다고 보았다. (1) 조기 사망하거나 소진되기 전에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2) 좋은 건강을 가지도록 영양과 적절한 거처를 가질 것 (3) 자유롭게 장소를 이동할 수 있기 (4) 적절한 감각 사용과 상상, 생각하기 (5) 외부 사물과 사람에게 애착과 감정 갖기 (6) 자기 삶의 계획을 비판적 성찰하기 (7) 타인과 더불어 살고 타인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는 관계 맺기 (8) 자연과 동식물과 관계 속에 살기 (9) 웃고 놀고 여가활동 즐기기 (10) 자기 삶의 정치적 결정에 효과적 참여, 표현, 인간적 노동과 물질적 권리 갖기. 이와 같은 역량들은 어떤 차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이 아니던가.

미성숙한 보호 대상으로서만 보고 제한을 할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존엄한 주체로서, 존중받아야할 주체로서 정치사회에의 참여는 기본권, 인권이다. 우리는 상호 의존하고 돌보는 존재이다. 모든 생명은 서로를 돌본다. 일방이 돌본다는 생각은 오만한 착각이다. 누구나 돌보고 돌봄 받을 수 있는 사회, 정치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의무라기보다 권리이다. 나는 존중받고 있는가? 나는 누구나 존중하고 있는가? 사람이건 사물이건 조직이건 존중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 아닐까.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