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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에 가다
  • 최승현 / 노무법인 삶 대표  
  • 승인 2018.12.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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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폐증과 소음성 난청 산재사건을 맡을 때 일이다. 광산에서 퇴사한지 얼마 안 된 노동자들을 만났다. 온 몸이 종합병원이었다. 진폐증에, 소음성난청에, 근골격계질환에, 사고로 인해 다친 부위, 탄광 노동이 고된 것은 알았지만 온갖 병들을 다 앓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나에게 ‘소음성 난청’ 산재에 대해서 궁금한 사항을 물었다. 매년 건강검진의 기록도 있고, 장해진단도 받았고, 탄광 갱내의 작업환경측정기록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탄광의 소음의 정도와 난청의 심한정도였다. 

소음성 난청은 연속으로 85dB이상의 시끄러운 사업장에서 3년 이상 일을 한 경우에 청력상실의 정도가 40dB이상인 경우에 정도에 따라서 장해14급부터 4급까지 장해급여를 지급하게 되어 있다. 청력상실정도는 3번을 측정해서 계산을 하는데 장해급여를 신청하면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하는 병원에서 다시 측정을 하기도 한다. 이 노동자들은 40dB이상의 청력상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시끄러운 정도는 6개월에 1번씩 측정하는 작업환경측정 기록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는데 대부분의 지역은 85dB 를 넘지만 안타깝게도 80dB, 82dB, 84dB 등을 기록하는 작업지역이 있었다. 시끄러운 정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노동자들은 이 기록들은 순 거짓말이라며, 그 갱도에서 착암기로 뚫는 것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냐고 물었다. 기록을 잴 때 제대로 하지 않는다, 직접 한 번 기록을 재보면 다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호기심도 생겼고 직접 증거를 수집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어요?” 물어봤다.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아는 사람을 통해 작업환경측정을 할 때 사용하는 소음측정기를 빌려 탄광으로 향했다. 

태백의 광산도 직영과 하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직영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하청업체 있는 곳으로 갔다. 탄광 갱내의 지도를 보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헬멧을 쓰고 귀마개를 챙겼다. 렌턴을 헬멧 앞에 두르고 탄광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참을 내려갔다. 그곳에서 레일 위의 열차에 올라타 구불구불 여러 갈래를 지나서 맨 마지막 ‘막장’까지 왔다. 

나는 광부들의 괴로움을 한 편으로 몸으로 느끼고 다른 한 편으로 궁금한 사항들을 재잘재잘 동행한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밥은 어떻게 먹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휴식은 어떻게 취하는지? 하루에 몇 시간 일을 하는지? 노동자들도 퇴사 후 다시 들어간 길이었지만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막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할 일을 시작했다. 착암기를 들고 벽을, 갱도를 뚫는 것이다. 가까이에 소음측정기를 들고 재보니 110-130dB가 나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소음이었고 귀마개를 착용했다. 그리고 나도 한 번 착암기를 들고 시도를 해봤다. 잠깐이지만 온 몸이 덜덜덜 떨리는 것이다. 팔은 계속해서 흔들흔들이다. 

원래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다시 열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 갱도의 흩날리는 석탄가루며 옆 벽의 자잘한 돌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올라가서 우리는 바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매일 갱에서 나오면서 이곳에서 씻고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잠깐 온 것이고 출갱시간이 아니어서 한가했지만 출갱시간에는 매우 붐빌 것 같았다. 탄가루가 흘러가고 탕 속의 물도 탁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소음성 난청’ 장해급여 청구를 했다. 갱도에서 소음 측정한 것이며 사진 등을 제출해서인지 85dB 미만이라도 시끄러운 작업장이라면 소음성난청을 인정해야한다는 판결 등이 있었기 때문인지 사업장의 시끄러운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청력상실정도가 쟁점이 됐다. 40dB 이상의 진단에 대해서 근로복지공단이 지정한 병원에서 인정받은 노동자도  인정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었다. 지정병원에서는 수면을 취하게 하면서 측정하는 방식으로 객관적이라고 한다. 40dB는 장해급여가 인정이 되고 39dB는 인정이 안 되는 것이다. (뭔가 억울하지 아니한가.)

우리나라의 탄광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었고 탄광촌을 이루면서 살았다. 고된 노동 속에서 몸이 상해가면서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산업의 에너지를 캐내었던 것이다. 1980년대 말 석탄합리화 사업으로 폐광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아직도 운영이 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점차 정리를 해가고 있는 것 같다. 탄광이 최종 문을 닫아도 아마 20-30년 동안은 잠복기가 있는 진폐증 환자가 나타날 것이고 그 때의 고된 노동을 생각해볼 것 같다. 

 

 

 

최승현 / 노무법인 삶 대표    nanalg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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