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와 내년이면 10주년이 된다. 주변 친구들과는 모두 알고 지내지만, 가족에게 내 여자 친구는 여전히 딸의 제일 친한 친구일 뿐이다. 부모님은 동성애자나 레즈비언, 게이 라는 단어는 다 알고 있지만, 그게 내 자녀의 상황일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단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대학 때 친구, 동아리 선후배, 친척, 전 직장 동료 등 수많은 지인들에게 나는 그저 결혼하지 않은 여자일 뿐이다. 지난 십여 년간 단단히 맺어온 나와 애인의 관계는 드러나지도 않고, 드러내지도 않는다. 커밍아웃은 그저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모두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커밍아웃은 여전히 어려운 선택지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성적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성적소수자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성소수자 사이에 선을 긋고 의도하지 않는 차별적 언행을 행하곤 한다. 

“결혼 안 해? 넌 동성애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난 게이 반대는 안 해. 그래도 너무 티내는 건 좀 그렇긴 하더라.”

별것 아니라 생각할지도 모르는 발언들은, 성적소수자들을 고민에 빠트리고, 내밀었던 손을 거두게 하기도 한다. 

관계 맺기의 시작은, 상상하기이다. 내 동생이 게이라면, 내 딸이 레즈비언이라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HIV/AIDS 감염인 이라면 나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 할 것인가. 내 처남이 트랜스젠더라면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에게 내 동생이 게이라고 말하는 게 두렵다면 그 이유를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가 성적소수자들에게 행하고 있는 혐오와 차별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나도 결국은 당사자의 일원일 수밖에 없다. 성적소수자의 친구인, 가족인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커밍아웃이 필요한 당사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했던 수많은 목소리들은 그저 “우리끼리”만 했던 말이 될 수 없으며, 결국은 그것이 사회가 성적소수자들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내가 성적소수자 인권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엄마는 주변의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혐오하는 목소리가 나올 때 마다 나에게 그들을 비판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아직은 본인의 딸의 이야기 까지는 상상력이 가지는 못하셨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어.”에서, “그래, (혐오) 그건 좀 아닌 거 같아”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래, 그건 좀 아닌거 같아”가 언젠가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로 바뀌는 그날과 함께, “여자 만날 바엔 혼자 사는 게 낫지”라고 이야기 했던 엄마의 말이 “만약에 너한테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해도 엄만 좋아”로 바뀌는 날도 함께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디데이를 헤아린다. 얼마가 더 지나야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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