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 미술관, 은평구로 이전 개관

진관천에서 본 사비나 미술관 @임종업

은평구에 처음으로 미술관이 들어섰다. 10월29일 개관한, 뉴타운 메뚜기 다리 옆(진관1로 93번지)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이 그것. 개관 22년째를 맞아 종로구 안국동에서 새 건물을 지어 옮겨왔다. 진관동 한옥마을의 한옥박물관, 옛 기자촌에 들어설 한국문학관과 함께 은평구의 문화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은 도발적인 외양으로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진관천 변 직각 삼각형 땅에 직각 삼각기둥 형태로 쌓아올린 것이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세 변의 길이가 각각 다른 만큼 세 측면에서의 볼륨감이 다르다. 1층의 반을 필로티 식으로 비우고, 맞은 편 모서리를 사선으로 잘라낸 데다, 옥상을 높은 가벽으로 두름으로써, 육중한 다각형 덩어리가 공중에 떠있는 모양새다. 특히 뿔 쪽에서 바라보면 벨 듯이 날선 모서리가 솟구친 것이 가시돋친 고슴도치 같다.  

입구 쪽의 계단 @임종업

내부로 진입하면 삼각형 체험은 시각에서 모든 감각으로 전환된다. 가장 뾰족한 예각 쪽을 1층~2.5층까지 60도 빗금으로 살짝 잘라내 입구 삼았다. 안으로 들어와 문득 돌아서면 삼각형 공간에 들어왔음을 비로소 안다. 거푸집 자국이 그대로인 콘크리트 벽체에, 전기, 수도, 환기 파이프가 드러난 천장. 외벽이 베이지색 우아한 고벽돌이었음이 환기되고, 마주할 전시 컨텐츠가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건물 내부는 삼각형이 같은꼴 또는 닮은꼴로 반복 또는 변주된다. 1층에 안내 데스크, 카페, 2층에 1전시장, 3층에 2전시장, 4층에 사무실과 수장고, 5층에 마당과 반개방형 복합문화공간을 배치하였다. 당연히 삼각 평면에 놓였다. 세 모서리는 모두 내부에서 통으로 잘라냈다. 직각 부분은 3~5층을 비움으로써 천창에서 2층 바닥까지 빛을 끌어들인다. 예각 부분 두 곳, 작은 삼각뿔 공간은 테두리 쪽을 계단 삼고 한가운데로 천창 또는 노천에서 빛을 끌어들였다. 

2층 1전시장 @임종업

미술관으로서 전형적 공간은 2층. 삼각형과 더불어 빛의 잔치를 즐길 수 있다. 내부 계단으로 그곳에 이르면 삼각형 무게중심에 박힌 둥근 기둥 하나를 빼고 텅 빈 삼각 공간이 펼쳐진다. 빛은 세 모서리에서 오는데, 천창의 하향광, 두 계단 쪽의 측광 등, 세기와 방향이 다른 세 개의 빛이 간섭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낳는다. 작품들은 자연광과 인공조명의 도움을 받아 제자리를 찾아간다. 얇게 뚫은 가로 창은 북한산을 끌어들여 관객이 눈 쉼을 하거나 이곳이 미술관임을 자각하게 한다.

조형적, 기능적 도발성은 공공조형물에서 또 한 차례 반복된다. 일정한 연면적 또는 건축비를 초과하는 건물은 건축비의 0.75% 이상을 들여 조형물을 설치해야 한다. 도시 미관을 고려한 의무인데, 대개는 시늉에 그쳐 변변찮은 조형물이 건물과 무관하게 한쪽 구석에 방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의 조형물은 설계와 시공 단계에서 8명(팀)의 작가가 참여하여 미술과 건축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예컨대 이길래의 ‘소나무 2018-0’(동파이프). 주차장에서 자라나 2층 슬라브를 뚫고 외벽으로 가지를 드러낸 듯하다. 밤이면 외벽 위쪽 둥근 창 불빛과 조응해 달빛 아래 고고한 소나무를 연상시킨다. 내부 계단참에 설치된 김범수의 ‘비욘드 디스크립션, 황선태의 ‘빛이 드는 공간’은 어둑신한 계단에 창의 형태로 설치돼 자연광 또는 인공광을 비춘다. 

입구 @임종업

이러한 랜드마크가 탄생한 배경에는 이명옥 관장과 공간건축사무소가 있다. 종로구 안국동에서 22년 동안 도전적인 전시를 꾸려온 이 관장은 장소를 옮겨 혁신적인 변화를 꾀했다. 장르에 걸치는 융복합성을 강화하고, 명상과 휴식기능을 추가하려는 것. 삼각형 땅은 그러한 의도와 맞아떨어졌고, 공간건축사무소는 이를 공간으로 풀어냈다.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무소 이충헌 팀장은 “건축주가 전적으로 믿고 맡겨 미적, 기능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축 포인트는 두 가지. 세 변의 벽체로 힘을 분산시켜 가운데 기둥 하나만으로 최대공간을 확보한 것과 캔틸로버 방식으로 기둥을 없애 입구에 독특한 공간을 연출한 것. 외부의 고벽돌 벽이 쏟아질 듯 이등변 삼각형 입구를 감아드는 것이 관객의 눈길을 잡아끌면서 미술관의 역발상적 특장을 형상화했다.

미술관은 한해 4~5차례 기획전을 여는데, 재개관특별전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예술가의 명상법’전은 내년 1월 말까지 이어진다.

계단창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김범수의 비욘드 디스크립션) @임종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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