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담긴 주택은 하나둘 필로티 빌라로 변해가고

1999년 1월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두 달 전, 은평구 구산동 7번지 골목에 이삿짐을 풀었다. 

구산동은 내 삶에서 고향 다음으로 오래 머물러 있는 곳이고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함께한 곳이다. 그전까지 가까운 불광동에 살았지만 구산동이라는 동네가 있는 줄도 몰랐었다. 

하루는 의료보험조합(지금의 예일여고 사거리 태평양 약국 2층)에 볼일이 있어서 이 동네에 왔는데 처음 와보는 장소였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이전에 많이 와 본 곳처럼 따뜻하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 달 뒤 부동산 아저씨 소개로 집을 보러 왔더니 역시나 이곳이었다.
‘구산동, 세상에나! 이것이 소위 시절 인연인가?’
그렇게 목화솜 이불같이 따뜻하게 느껴지던 구산동 7번지 골목과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십 년 전 이 골목 주변에는 대부분 예쁜 주택들이 많았다. 
라일락 피는 계절이 되면 얄밉도록 고운 향기가 이른 아침부터 나를 베란다로 유인했던 <전원> 선생님 댁. 
자그마한 단층집에 담 너머 드리워진 나뭇가지에 손바닥만하게 <전원>이라고 쓰여진 것이 특이하고 궁금해서 노크를 했더니 영혼 맑은 수녀님 같기도 한, 웃음 고운 아줌마가 있는 동화 속 같은 분위기의 피아노 교습소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주저 없이 두 아이를 선생님께 맡겼다.

"선생님, 근념하시죠? 열심히 일하고 떠나신 여행 사진 뭉클했어요.
몇 해 전, 라일락이 예쁜 <전원>은 뒷집과 함께 필로티형 빌라가 되었고 선생님은 일을 내려 놓고 이웃 동네로 떠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친구이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영어를 배우러 가겠다고 호들갑을 떨어 이끌려 갔더니 뒷골목에 잔디가 깔린 유럽풍의 하얀 집이 있었다. 동네에서는 <하얀집>으로 통하는 영어 과외교습소였다. 딸은 영어가 목적이 아니라 잔디가 있는 하얀 집에 들락거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집이 다가구 빌라로 변신하기 위해 허물어지던 날 우리 딸이 참 많이 슬퍼했다. 

큰집에 우두커니 무표정으로 계시는 앞집 노부부 어르신은 손주가 올 때면 웃음을 지었다. 할머니가 119구급차를 타고 가시던 날 하얗게 되어 허둥거리던 할아버지가 자녀들 집으로 거처를 옮기자 그 집도 4층짜리 필로티 빌라가 되었다. 아직도 내 눈에는 통유리 남향 2층 집으로 보이지만….

S대 출신이라는 50대 고독사 한 이웃을 끝까지 잘 수습한 천사 같은 선교사 부부,  아플 때 지나가면 좋은 거라며 영양제를 주머니에 넣어주던 생활력 갑이었던 골목 입구 슈퍼 아주머니, 집 담장에 주차금지 대신 빵모자 쓰고 그림을 그리던 70대 싱글이신 의사 출신 미스 닥터 할머니.

동향에서 아침 햇살이 환하다
오늘도 빗자루로 하루를 시작하며 자전거 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둘러보며 각종 민원으로 해결사 노릇을 하는 앞집 아저씨, 자택 지하실에 작업실 겸 동아리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각종 봉사 활동을 주관하던 조계사 출신의 친절하던 왕언니, 동네에서 나하고만 소통하던 89세 장금순 할머니,  금순 할머니를 볼 때마다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리다.

서창에 환타빛 노을이 진다
나보다 친화력이 좋은 아들내미 덕분에 알게 된 뜻밖의 이웃들도 있다.
엄마 등에 업혀 와 뭔지도 모르고 이사 와서는 저녁마다 집에 가자고 칭얼거렸던 딸내미가 어엿한 숙녀가 되기까지 그 세월 동안 스쳐 간 수많은 인연들이 아련하다. 

기억 속 예쁜 집들이 필로티 빌라로 변신하고 창문 열면 잘 보이던 북한산과 하늘이 아파트와 빌딩에 가려지고 구산동 7번지가 연서로 15길이 되었지만, 이 골목에서 흰 구름 머물듯이 오고 간 많은 인연들은 두 번 바뀐 나의 강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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