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사학과 조명로 명예교수가 '연서역과 검암참의 위치 고증 연구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18 파발제를 맞아 지난 2일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은평의 옛길과 통신–우역·파발·봉수’를 주제로 파발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은 연서역과 검암참(금암참)의 위치 고증 연구와 능행 때 국왕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검암참의 역사와 역할에 관한 연구, 봉산해맞이공원에 위치한 봉현 봉수의 위치와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 등에 관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연서역과 검암참(금암참)의 위치 고증 연구는 경기대학교 사학과 조병로 명예교수가 발표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첫 역사였던 연서역은 공무여행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조병로 교수는 “연서역은 각 도의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이 주재하던 곳으로 연서역 찰방은 주변 여섯 개 역을 관할하는 역할을 했다”며 연서역의 규모와 역할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서역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있는데 조병로 교수는 “인조별서유기비문,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 조선와조실록 등 연구를 통해 현재 구산역과 역촌역 사이가 연서역이 있었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국왕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검암참의 역사와 역할에 관한 연구는 한신대학교 김선희 외래교수가 발표했다. 김선희 교수는 “검암(금암)일대는 의주대로의 기착지였고 조선초기부터 중국으로 통하던 육상 교통로의 요지”였다며 “사신이나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숙박과 역마를 제공하기 위해 관 또는 참이 설치되었고, 이후 파발이 정착되면서 서발의 주요 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봉현 봉수의 위치와 운영체계에 대한 연구는 은평향토사학회 박상진 향토사학자가 발표했다. 봉수는 파발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통신수단이었는데 은평구 구산동에는 봉산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봉산 봉수대는 서대문 안산 봉수대, 남산 봉수대로 이어지는 조선 봉수 제4로였다고 전해진다.

봉산 봉수대에는 1987년 수방사 대공포부대막사가 들어서 기존 모습은 모두 훼손돼 있었는데 2012년 봉산해맞이공원에 복원됐다. 박상진 향토사학자는 봉산 봉수대가 고양시 강매동 해포봉수였다는 주장을 서론에 밝히면서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김정호의 <대동지지> 연구를 통해 현재 봉산 위치에 봉수대가 위치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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