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뭔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는데, 잘 생각나지 않네요.”

“앗, 잠시만요, 잠시만요, 진료실 다시 들어가서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제가 진료실에서 자주 겪는 상황입니다. 분명 진료실에 들어오시기 전에는 의사에게 이걸 물어봐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으셨던 분들이, 진료실에만 들어오시면 약간 긴장을 하시는지 저렇게 말씀하시곤 하시죠. 혹은 진료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불현 듯이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지요?

진료라는 건 의사와 환자에게 조금 다른 경험입니다. 의사, 간호사, 병원 직원들에게 진료실의 상황과 풍경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병원 진료실에 오는 상황이 ‘일상적이지 않은’ 혹은 ‘일상 유지가 힘든’, ‘일상이 망가진’ 상황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근본적인 경험의 차이가 진료실에서 우리의 소통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진료실에서 진찰을 잘 받는 방법을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우선 진료를 잘 받으려면, 주소를 중심으로 미리 생각해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주소는 집주소는 아니고요, 주호소, 주된 증상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열이 나서 왔어요’, ‘기침이 나서 왔어요’ 할 때 열, 기침 이런 것들이 주소이지요. 주소는 대개 몇 일 전부터 발생했는지가 진단에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에, ‘3일 전부터 기침’ 이렇게 정리를 해보시면 진료를 잘 받으실 수 있습니다.

간혹 ‘3개월 전부터 기침’이라는 주소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 분들께는 3개월 전부터라는 기간도 중요하지만, 3개월 전부터 기침이 났는데 왜 하필 오늘 오셨는지도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래서 ‘3개월 전부터 기침을 간간이 했지만, 오늘 아침에는 기침하다가 각혈을 했어요’, ‘3개월 전부터 기침을 계속 하기는 했는데, 나는 별로 불편하지 않아서 참고 있다가, 오늘 딸이 기침이 너무 오래되니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와 같이 왜 오늘 왔는지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주소를 중심에 놓고 미리 생각을 하셨으면 이제 문진에 집중하실 수 있습니다. 문진은 진찰의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눈으로 보는 시진, 귀로 듣는 청진, 손으로 만져보는 촉진 등 여러 가지 진찰 방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묻고 답하는 문진입니다. 주소와 기간도 문진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고, 왜 오늘 오셨는지, 동반되는 다른 증상은 없는지, 주소가 어떨 때 좋아지고 어떨 때 안 좋아지는지, 술/담배는 하시는지, 가족력은 어떤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우리가 같이 이야기 나눠야 할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진료실 의사들에게 진단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주소와 문진입니다. 그러니 대기실에서 기다리실 때 주소와 문진에 대해서 잠깐 생각을 정리해 보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진료실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진료받으실 수 있답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