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인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 쯤에 공개하는 악의적인 비공개를 줄일 장치 필요

“이거 이미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례까지 있는 건데 비공개 하시면 어떡해요.”

“대법원 판례 같은 거 있어도 우리는 비공개 하기로 결정 했어요. 필요하시면 소송 하세요”

정보공개청구를 하다보면 공공기관과 가끔 하게 되는 대화입니다. 비공개를 하기로 작정한 공공기관에게는 몇 년 전에 똑같은 정보를 그 기관에서 공개 받았다는 사례도, 공개 해야 한다는 재판 판결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송, 말은 참 쉽습니다. 변호사 없이 직접 소장도 쓰고, 재판도 할 수야 있기는 하죠. 하지만법률가도 아니고, 단체도 아닌 개인 혼자서 선뜻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판에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길게는 몇 년 동안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러다보면 비공개했던 그 정보의 공개의미는 사라져버리기도 하죠.) 이렇게 소송이 쉽지 않다는 걸 알다보니 공공기관에서는 일단 닥치고 비공개로 버티며 소송에서 지면 공개하겠다고 뭉개는 것입니다.

그럴때마다 이 생각을 합니다. “악의적 비공개에 처벌이 필요하다” 

저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제가 일하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에 정보공개 문의를 하시는 시민의 상당수는 악의적으로 비공개를 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공무원을 처벌 할 수 없냐는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처벌조항을 법에 넣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7년에는 법개정 목전에 가기도 했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정보공개법에는 처벌조항이 없습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정보를 위변조하거나 허위내용을 공개할 경우, 정보를 은닉 목적으로 비공개할 경우에 공직자를 처벌 한다는 내용을 정보공개법에 넣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지만 공공기관은 공무원의 업무를 위축시킨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법 개정을 번번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25개 이상의 주에서 정보공개법에 벌금과 징역 등의 처벌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 이 법률에 의해 형사처벌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항이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최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 세금도둑잡아라, 뉴스타파는 함께 국회에서 국회의원 정책개발비 영수증을 열람했습니다. 이것도 국회사무처가 비공개하는 통에 소송 끝에 고등법원 판결로 겨우 열람이 가능했습니다. 이를 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씁쓸함이 더 컸습니다. 7년 전에는 소송같은 것을 하지 않고도 바로 똑같은 국회의원 정책개발비 영수증을 공개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공개하라는 것이 명명백백히 법률 조항, 법원 판례, 행정지침에 있어도 기관이나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공개와 비공개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 허다합니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패턴과 항목의 예산낭비 사업도 100개의 지역에서 100번의 소송을 해야만 공개받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러다보니 ‘아이고~ 의미없다’며 정보공개를 아예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법에 공개하라고 적혀있는데도 비공개를 하고, 공개하라는 판례가 버젓이 있는데도 비공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그렇게 해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구인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 쯤에 공개해도 아무 상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악의적이고 자의적인 비공개를 줄여 정보공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공개되는 정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처벌이라는 강력한 컨트롤 장치가 유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공개법에도 악의적이고 자의적인 비공개에 처벌조항이 필요합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