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9.20 목 15:36
상단여백
HOME 연재 내마음의 은평
내 사랑 불광천불광천의 사계를 누리는 것만으로행복하고 감사하다
  • 김혜정 / 월간 <동화읽는어른> 편집위원
  • 승인 2018.09.07 16:46
  • 댓글 4
사진 제공 김혜정

2010년 강북구 미아동에서 응암 3동으로 이사를 왔다. 사흘 뒤였을까. 이른 아침 혼자서 불광천에 갔다. 와, 진짜 신세계였다. 집 가까이에 이토록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이 있다니! 강북구에 살 때는 결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마음에 빛을 얻은 것 같았다.  

결혼하고 3년 만에 딸 하나를 겨우 낳고 녹내장을 앓았다. 그 뒤로 눈이 계속 안 좋았다. 은평으로 이사 와 사방으로 푸르른 불광천을 만났다. 초록 빛깔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불광천은 녹내장을 앓았던 눈의 피로를 줄여 주었고 눈에 충분한 휴식을 주었다. 그때부터 불광천은 나만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은평구에 9년째 살면서 이사를 세 번 했다. 집을 구할 때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0분 안에 불광천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올해 5월 말 이사 온 우리 집은 불광천까지 6분이면 갈 수 있다.

강북에서 이사 온 그해 10월 은평백일장이 열리기 며칠 전 불광천 산책을 나간 날이 떠오른다. 보행자도로와 자전거도로 사이에 조그만 풀밭이 있었고 그곳의 작은 바위 위에 이슬에 젖은 은평백일장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당시 제시된 백일장 글제 중에 ‘내 고장 은평’이 있었다. ‘바로 이거야, 내가 사랑하는 불광천으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는 동안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백일장이었는데, 이때는 나한테 참가해 보라는 신의 계시처럼 여겨졌다.

백일장에 가서 세 시간 동안 집중해 수없이 걸었던 ‘내사랑 불광천‘을 되새겨보며 글을 썼다. 별 기대 없이 흐뭇한 마음으로 원고지를 제출했는데 대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은평구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글과 편집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나와 불광천과의 인연은 무척 깊다고 하겠다.

사진 제공 김혜정

처서가 지나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뜨거웠던 여름과는 결이 다른 바람이다. 요즘 같으면 계속 걷고 싶다. 내 몸의 알람은 산책하기 좋은 이른 아침에 맞춰져 있는지 6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번쩍 떠진다. 불광천을 걸으며 이슬에 젖은 짙은 풀냄새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건 나만이 누리는 호사이다. 

산책 때마다 불광천에 들어서는 곳은 신사동 방향 와산교이다. 아침은 조용한 듯하면서 부산하다. 눈은 초록 나무와 풀에 가 있고 코는 벌름벌름거리면서 주변을 흡수한다. 불광천은 폭이 넓어서 양쪽에 있는 높은 건물이나 빌라가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은평구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건 축복이다. 불광천의 사계를 누리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다. 

느릿느릿 걸으며 하루하루 불광천이 변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린다. 그날그날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록으로 남긴다. 나만의 불광천 사랑법이다. 불광천을 기록하며 나의 심신이 불굉천을 기억하게 하고 불광천을 통해 친구들과도 소통한다.

불광천을 여유롭게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어느 곳에 참새와 비둘기가 많이 서식하는지, 주민들이 어떤 곳의 체육시설을 좋아하는지, 무더위에 몸서리치다가 어느 다리에서 더위를 식히는지, 십대 아이들이 어디에서 춤 연습을 많이 하는지,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그늘진 곳은 어디인지, 응암동과 신사동, 증산동 방향 중에 어느 쪽이 햇볕을 피할 수 있고 조용히 걷기 좋은 길인지 등이 몸에 배이듯 익숙해진다.

아름다운 불광천을 걷다 보면 아름답지 않은 광경도 자주 눈에 띈다. 레인보우교에 한쪽은 자전거, 한쪽은 사람만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시시때때로 오토바이가 질주한다. 그러다 보니 바닥이 패여 자주 보수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저녁 무렵에는 연인, 가족,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아침에 가보면 전날의 흔적으로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신응교 아래는 어르신들의 바둑 쉼터이지만 의자와 테이블이 방치되어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 응암동 방향 와산교 아래는 큰 거울을 보며 에어로빅이나 여러 가지 활동이 이루어 지지만 맞은편은 시멘트 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음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불광천은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 수질 개선도 계속될 것이고 주변 환경도 쾌적해질 것이라 믿는다. 불광천은 은평구 주민 모두를 위한 쉼터이고 너도나도 아끼고 보살펴야 하는 귀한 보물이기에.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불광천에 나가 천천히 걸어야겠다. 

김혜정 / 월간 <동화읽는어른> 편집위원  siono@naver.com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4
전체보기
  • 최주연 2018-09-13 15:08:10

    은평자원순환센터 지어지면 불광천도 오염되겠죠?ㅠ   삭제

    • 안수현 2018-09-12 18:00:03

      기사를 읽으면서 불광천을 고스란히 느껴봅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품고있는 곳이네요. 저도 불광천만나서 가보렵니다^^   삭제

      • 백수경 2018-09-12 17:35:46

        글쓴이의 불광천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합니다.
        저희 아이들도 아기 때는 업혀서, 걸음마 할 때는 아장아장 산책을, 지금은 두발 자전거로 씽씽 달리며 불광천과 함께 자랐네요. 집 근처에 이렇게 좋은 자연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삭제

        • 김희진 2018-09-12 17:03:49

          불광천따라 자전거타고 한강 물놀이장까지 다녀왔어요 ^^
          가을 하늘과 바람을 한껏 느끼고 왔는데
          내 사랑 불광천~~~ 공감합니다 ^^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