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은평녹색당 사무국장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는 28.6%로 가장 많은 가구 형태이다. 2005년에는 4인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구형태였지만 2010년 2인가구, 2015년부터 1인가구가 가장 많은 가구로 바뀌었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는 한편 위기로 다가오지만,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제도로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이미 1인가구 맞춤형 가전제품과 소규모 식생활 제품 등 빠르게 대처하고 있지만, 정책적으로 1인가구는 늘 열외였고 사회적으로 1인가구에 대한 인식은 불완전성, 일시적이라는 인식으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울시는 2016년 전국 최초로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를 제정하고, 1인가구에 대한 조사, 연차별계획, 5년단위 종합계획 수립과 더불어 예산집행 근거도 마련하였다. 그 조례에 근거하여 서울시는 1인가구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1인가구에 대한 세대별 연구조사와 정책제안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6년 조례제정 이전인, 2012년 서울시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성평등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하고, ‘비혼여성 1인가구 정책지원방안’을 수립하였다. 주거권, 안전권, 노동권, 건강권, 사회권 등 권리로서 현재 여성1인가구의 삶을 분석하고, 구체적인 정책제안이 담긴 훌륭한 보고서이다. 하지만 보편적 안전과 도시재생과 연동된 가로등 설치, 순찰강화 외에 도입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노동권 영역으로 제시된 성희롱 규제를 통한 ‘안전한 직장 만들기’ 정책은 2018년 지방선거 이후 박원순 시장은 정책으로 도입했다. 참고로 이 보고서는 2012년 박원순 시장 재임시절 작성된 것이다. 

이미 연구는 충분했고, 당사자들과 연구자가 참여해 제시한 정책은 바로 시행해도 될 만큼 구체적이다. 하지만 애써 만든 정책은 예산을 반영하고, 행정시스템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1인가구가 이렇게 많은데, 정책수립과 집행과정에서 1인가구/여성1인가구는 투명인간 취급했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할 경우 주거지원 등 여성의 자리가 약간 생겼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영역에서 여성의 공간은 삭제되어 갔다. 제로섬 게임처럼 여성의 자리는 그렇게 제약되고 있었다.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 은평구 여성정책과의 올해 주요사업 1번은 ‘출산지원 사업’이다. 이는 제2기 마을공동체 기본계획(2018-2022)에도 반복되고 있다.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에 여성으로 분류된 사업은 부모커뮤니티 지원과 공동육아로 여성은 ‘엄마’로만 한정되어 있다. 공공에서도, 마을공동체에서도 엄마가 아닌 여성은 배제되었으며, 특히 결혼하지 않은 여성1인가구의 자리는 없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이라는 황당한 제안은 그들의 룰에 맞추라는 요구처럼 들릴 지경이다.  

고독사 등 사회적 관계망이 부재한 1인가구의 현실이 부각되면서 다행히 최근 1인가구 지원정책이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은평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1인가구 고독사 방지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은평구는 올해 찾동사업 일환으로 중년(만50세-64세) 1인가구 17,666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이후 맞춤형 복지연계를 통해 카톡플러스 친구를 개설해 1:1 채팅을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은평건강가정지원센터는 40-50대 중장년남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영화보기, 볼링, 등산, 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다행이지만, 행정의 접근은 이번에도 시혜적이고 사후적이다. 그리고 정책설계에 젠더적 관점도 없다. 행정영역에서 관계망 형성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왜 여성1인가구는 빠져 있는걸까?

나는 각 기관의 권한과 역할에 맞는 일을 수행할 때, 효과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에서 내게 카톡을 보내 생사를 확인해주고, 여가시간 계획을 짜주는 것보다 안전하고 적절한 주거공간에 살 수 있는 기회, 지역에서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는 노동에 대해, 출산하지 않아도 보건소에서 건강상담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공영역 외에도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여성1인가구와 1인가구와 공존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해야 한다. 공유냉장고, 마을기금, 건강생활 등 우리 삶만큼이나 다채로운 방식을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혼인유무보다 중요한 일상의 안전을 돌볼 수 있는 관계가 동심원처럼 넓어진다면, 더 이상 원룸 옆집사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육아를 고민하고, 지원망을 함께 만든 것은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성1인가구를 포함한 1인가구를 위한 자리를 마을에서 그리고 공공영역에서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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