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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소통의 문화가 우선이다민선7기 은평구 문화정책에 바란다
  • 염신규 /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8.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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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겸임교수로 출강 중인 문화대학원 수업 중에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문화도시 사례연구'라는 강의로, 세계 각국의 문화도시 사례를 통해 문화도시의 방법론에 대해 다루는 수업이었다. 중간고사 이전까지는 문화도시의 일반적인 방법론에 대해 강의와 발제로 수업이 이루어졌고 중간고사 이후에는 사례를 다루고 있는 교재의 내용을 학생들이 요약정리해 오면 코멘트를 달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교재로 사용했던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 하나가 문제였다. 그 책은 문화도시를 다루고 있는 다양한 사례집 중 비교적 많이 알려진 책으로 각종 공공정책 등에도 많이 인용되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사례 한 꼭지의 발표를 맡았던 학생이 문제제기를 했다. 그 사례로 다루고 있는 홍콩의 모 지역을 자신이 두 차례 정도 방문했었는데 전혀 좋은 문화도시의 사례로 볼 수 없었다는 거였다.

선생 입장에서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12곳의 도시를 모두 다녀본 입장도 아니기도 하거니와 도시의 상황이란 게 방문하는 시점에 따라, 혹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 사례집에서 다루는 방식은 정책적 시도를 대부분 성공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그 학생이 바라본 그 도시의 풍경이 정확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토론을 진행하다가 수업을 간신히 마무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지역을 다녀온 문화정책연구자에게 그 지역이 2010년대 중반 이후 결과적으로 문화적 재생에 실패한 사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재가 쓰여졌던 시점은 2000년대 중반이었으니 아직 정책의 성패가 객관적으로 드러나기 이전이었던 셈인 것이다. 

변화의 폭이 큰 문화활동, 지역문화정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고민할 것들은?

민선 7기 은평구의 문화정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수업 중에 겪었던 다소 황망한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이유는 문화와 지역 발전을 정책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의 어려움과 복잡성을 언급하기 위함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화 쪽 일을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점점 더 강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쉽게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내용을 이제는 그렇게 쉽게 단언하지 못하겠다. 특히 문화와 공공정책, 그 중에서도 지역이 만나는 대목은 더욱 그러하다.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예측하기 힘들고 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문화적 활동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취향도 계속 바뀐다. 그런 한편 지역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로 올수록 그 변화의 가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지역적 변화의 폭은 특히 매우 급격하다. 지금 당장의 트랜드에 발맞춰서 계획을 입안해봐야 계획이 실현될 시점이 되면 아주 한물 간 구경꺼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좀 저급한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해당 자치구가 싸이의 춤을 형상화한 '말춤 손목 동상'을 세웠다가 국내외적으로 빈축을 산 예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보면 꽤 많은 문화정책이 지역에서 시도되었다가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지역의 특성을 아예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아예 실현 가능성이 없는 시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꽤 좋은 아이디어가 시도되었지만 실패한 경우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흔히 동아시아적 전통에서 강조하는 천(天)지(地)인(人)이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하늘)은 시기, 혹은 타이밍이다. 어떤 시점을 잡을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땅)는 주어진 환경이다.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원과 역사성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사람)이다. 여기서 사람이란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이나, 인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어가는 관계, 사람과 집단이 맺어가는 관계, 다양한 관계와 관계들이 포도송이처럼 엉켜서 만드는 상호부조의 네트워크가 작동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적이었던 지역 문화정책, 문화도시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성공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사람을 모을 수 있고, 모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여백을 존재하게 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네트워크가 전제되고 있다. 거창한 계획에서 출발하지 않더라도, 소소한 욕구와 시도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목표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이 이루어지고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신뢰의 네트워크 속에 전문적 역량이 투여될 때 성공적인 결과로 되돌아온다.

한 때 반짝하는 문화정책으로 남지 않으려면?

문화정책연구자로 살면서 접하는 당혹스러운 질문 중 하나가 주로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게 듣는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요?”다. 물론 세상에 좋은, 참신한 아이디어는 널려 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에 적합한 것인지는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먼저 지역의 문화적 지층을 심층적으로 탐구해야 한다.

또한 지역민들이 어떤 일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환경과 자원에 대한 충분한 파악없이 세워진 계획들은 사상누각이 될 공산이 크다. 이에 대해 얼핏 기억나는 사례가 있다. 수 년전, 남쪽 지역의 어느 군 단위 지자체의 문화계획 수립을 진행할 때였다. 지자체장은 대중음악을 통해 지역의 활성화를 이루고 싶어 했다.

별다른 자원이 없는 지역의 입장이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주변 여건이었다. 록페스티발 같은 대규모 음악행사를 하기에 그 지역은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게다가 숙박시설도 부족했다. 대중가수들을 레지던시로 끌어들일 매력 요소도 부족했다. 일단 교통이 너무 불편했다. 물론 그 지역도 강점이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었다.

우리 연구진은 힐링, 여행과 같은 요소와 대중음악을 결합하는 계획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자체 공무원들은 뭔가 남과 같지 않은 계획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지 못했다. 녹음 스튜디오와 같은 생산시설, 대규모축제, 일자리 등과 같은, 흔히 지역문화계획에 들어가는 요소들을 다 넣어주길 바랬다. 지자체의 의견을 전혀 배재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매우 타협적인 보고서가 만들어졌는데 솔직히 지금까지도 마음이 무겁다. 진짜 그 지역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고민들이 충분히 관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선7기의 은평구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 공약들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고 큰 방향성과 조감도 정도만 제시된 것으로 안다. 그 한축은 불광천변을 중심으로 문화와 미디어의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축으로 수색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임 구청장 시절에 추진하던 북한산 한문화특구 사업이나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등의 사업들도 계속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터무니 없는 계획들은 아니다. 45년 가까이 은평구 주변에서 살아온 입장에서 불광천이 지역에서 갖고 있는 의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수색역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지리적 역할, 특히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것이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의 달라질 위상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진짜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여기까지는 단순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이걸 어떤 이들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본질적으로는 훨씬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끼리 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전문가들을 불러서 계획을 짜게 만들 것인가? 정말 어렵지만 민간역량을 최대한 발굴하여 문화협치의 틀을 짤 것인가? 빨리 가시적인 성과를 만드는 방식도 있고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방식도 있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한국 지자체의 문화정책은 주로 전자의 방식을 택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결과가 모두에 언급했던 홍콩의 사례와 같은 결론으로 악순환되었다. 한 때 반짝하고, 사람들 모여 사진 찍고 이것저것 설치물 만들어지고 그리고 수년 후에는 뇌리에서 잊혀져버리는 악순환 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소 멀리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공감과 소통의 문화를 먼저 만들어보자. 지역은 완만하게  혹은 급격하게 변화한다. 그 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변화무쌍함은 정책연구를 어렵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문화정책이 즐거운 이유이기도 하다. 푸르른 은평에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닮은 문화의 씨앗이 천천히, 여럿의 손길 속에 뿌려지길 바란다.

 

 

염신규 /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axel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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