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도 새 날이 오고 있는지

보행자의 거리에서 바라 본 카피톨리오와 국립극장. 이 거리는 그림, 조각, 정크아트 등 예술 소품을 파는 노점이 즐비하다. 품새만 보면 유럽 어느 거리와 다를 바 없다. 석조 대리석이나 콘크리트 건물들은 백 년 이상 된 것들로 스페인 식민지를 거쳐 미국과 국교 단절 전까지 제국으 지배하던 부유한 생활을 보여준다. 그러나 4-50년대 구형 차들이 쌩쌩 달리는 거리는, 실제 내려보니 걷기 힘들 정도로 매연이 심하다. 겉은 빈티지 차로 보이지만 속은 거의 교체가 되어서 가치는 없는, 안팎이 다른 차들. 대부분 택시로 쓰인다. 그것도 관광객용.

의회건물은 미국 국회의사당을 모델로 만들었다. 1929년 완공. 내가 찾은 2015년에는 공사 중인지 30여 미터가 넘을 외벽 전체를 그물로 덮어 놓았다. 오른쪽 건물은 국립극장. 꼭대기에 천사상이 있다. 카피톨리오 건물에서 미국의 민낯을 본다. 세계 최대 사탕수수 생산지를 점령하기 위한 제국주의 미국과 식민자본, 그리고 거기에 빌붙은 독재자들의 이합집산을. 또한 제국주의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력갱생의 순환경제를 탄생시킨, 쿠바혁명과 피델 카스트로를 떠오르게 한다.

혁명 성공 후에도 친미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은 그대로 혁명 쿠바의 의회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미국의 턱밑에서 국교재개를 원했던 쿠바의 지난함이 스쳐갔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극한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이곳에도 다시 국교를 정상화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해. 여행자의 눈에 비친 아바나거리는 활기찼다.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카피톨리오 반대쪽은 곧 허물어질 것같이 허름하고 칠이 벗겨진 주거건물이 있다. 석조건물 발코니에 널린 빨래들. 민소매와 속옷가지들이 빨랫줄과 철제 난간에 늘어진 모습은 옷주인의 고달픈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회 앞에 이런 풍경이 치장없이 드러난 것에 오히려 진솔함을 넘어 당당함까지 느껴졌다.

카피톨리오 주변, 몇몇 가게만 문을 연 시장 건물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토요일이라 놀러가거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또 쇼핑을 하기 위해 이렇게 북적인단다. 길바닥은 고인 물에서 나는 냄새와 사람들의 말소리, 차소리들로 왁자지껄 정신이 없다. 쿠바에도 새날이 오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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