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로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마을을 만들어볼 순 없는 것일까?

   물푸레 나무

역대급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2017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880~2016년 중 가장 더웠던 해 1위는 2016년이었다고 한다. 2위는 2015년였고, 3위 2014년, 4위 2010년, 5위 2013년, 6위 2005년, 7위 2009년, 8위 1998년, 9위 2012년, 10위는 2003년, 2006년, 2007년 순이었다고 한다.

보면 알겠지만 더웠던 해 상위 순위는 2000년대 이후로 몰려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더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이 모든 현상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 2016년은 조만간 2018년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가 열파에 휩싸여 불타는 듯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리나라도 가장 무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된  1994년을 넘어설 기세다. 너무 덥다 보니 바깥나들이가 꺼려지고, 길을 걸을 때도 가로수 그늘 아래가 천국과 같다. 나무 그늘이 없는 횡단보도 아래쪽에는 거대한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행정의 배려다.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행정의 변화가 조금씩 일상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의 모든 공간을 그늘막으로 덮을 수는 없는 법. 이럴 때 도시 곳곳이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는 숲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봤다. 마을 곳곳이 숲 속에 들어서 있다면 지구온난화 현상도 훨씬 누그러뜨릴 수 있을테고 한 여름의 더위쯤이야 가볍게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도시 곳곳에 숲을 조성하고 도시의 폭염과 도시열섬화 줄일 수 있어

나무와 나무가 만드는 숲은 도시를 얼마만큼 시원하게 만드는가?

1999년 강원대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플라타너스와 단풍나무 한 그루의 8월 하루 동안 증산량이 시간당 5100㎉의 냉방능력이 있는 15평형짜리 에어컨 두 대를 13시간 이상 가동한 것과 같다”고 보고했다. 국토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 등 연구팀은 2016년 건국대 일대 숲지대를 대상으로 분석해 “도시림 캐노피(덮개)가 일평균 5도 정도의 평균복사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한국조경학회지〉에 실었다. 도시 곳곳에 숲을 조성하고 도시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의 통로를 잘 활용해 도시를 재구성하면 도시의 폭염과 도시열섬화를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연구 결과이다. 

 나무로 푸르러진 세상을 꿈꾼다.

그런 꿈을 이름으로 온전하게 받아안은 나무가 있으니 ‘물푸레나무’가 아닐까 싶다.

물푸레나무가 많은 앵봉산은 건강한 숲, 그 숲 인근 마을을 물푸레골이라 불러

은평구의 외곽에 자리 잡은 앵봉산은 건강한 숲이었다. 그런 곳에 물푸레나무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그 숲과 인접한 마을은 물푸레골이라 불렸던 것이다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이 나무의 가지를 꺾어 물에 한나절 담가두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 이런 모습을 관찰한 이가 물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란 뜻으로 ‘물푸레나무’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물푸레나무는 나와 인연이 깊다. 우선,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의 대표 중 한 분이 물푸레나무이다. 물론 사람대표도 있으니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말 못하는 생물들을 대신해 모든 생명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생물대표를 모셨다.

수많은 생명 중 물푸레나무가 대표가 된 데에는 물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의 특성이 온 세상을 푸르게 만들고자 하는 단체의 소명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다른 인연으로는 단체가 처음 사무실을 개소한 장소가 ‘물푸레골’이었다. ‘물푸레골’이라고 하면 시골지명처럼 들리겠으나 거대도시 서울의 서북지역 자치구인 은평구에 속한 마을이었다.

은평뉴타운이 들어서기 전, 2003년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구파발역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현재 카톨릭성모병원과 소방행정타운이 들어선 지역 골짜기에 자리한 동네 이름이 ‘방아닷골’이었고, 그 옆 골짜기 마을이 ‘물푸레골’, 그 옆 마을이 ‘탑골’이었다. 마을에 방앗간이 있다고 해서 ‘방아닷골’, 예전 절의 흔적인 탑 유물들이 남아 있다 해서 ‘탑골’, 골짜기에 물푸레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물푸레골’이라 하였다고 들었다.

물푸레나무는 건조한 곳보다는 조금 습한 환경을 좋아한다. 이런 환경은 대부분의 식물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이다. 그러니 물푸레나무가 많이 자라는 숲은 상대적으로 건강한 숲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은평구의 외곽에 자리 잡은 앵봉산은 건강한 숲이었다. 그런 곳에 물푸레나무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그 숲과 인접한 마을은 물푸레골이라 불렸던 것이다.   

물푸레나무의 한자이름은 수정목(水精木), 수청목(水靑木)이다. 이 역시 물을 푸르게 만드는 특성에서 따온 것이다. 물푸레나무를 태운 재는 귀한 염료로 쓰였다. 옛날 수도승들은 물푸레나무 태운 재를 물에 풀어 옷을 염색했다. 물푸레나무 잿물로 물들인 옷 역시 파르스름한 잿빛을 띄었다고 하는데 잘 바라지 않아서 승려복으로서는 최상품이었다고 한다. 동서양이 이쯤에서 통한다. 영국에서는 이 나무를 재나무(ashtree)라고 부른다.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서울 강서구의 어느 산에 답사 갔다가 동네 어르신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산에 물푸레나무가 보이길래 나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 드렸더니, 당신도 그 나무를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옛날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어렸을 적 눈에 다래끼가 나거나 눈병이 생기면 물푸레나무를 물에 우려 그 물로 눈을 소독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초기 눈병은 말끔히 치료되었다고 한다.

단단하고 강해서 연장의 손잡이나 야구 방망이 , 악기의 몸통을 만드는 데 쓰이는 물푸레 나무

실제 한방에서는 물푸레나무 껍질을 진피(秦皮)라 하여 눈병을 고치는 약으로 사용한다. 《동의보감》에는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부으면서 아픈 것과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정기를 보하고 눈을 밝게 한다.”고 기록하였다. 물푸레나무 달인 물로 먹을 갈아 글을 쓰면 몇백년이 지나도 지워지질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문신을 새기는 데도 물푸레나무 달인 물을 썼다고 한다. 

 물푸레나무는 목재로도 쓰임새가 많다. 질기고 잘 휘기 때문에 도리깨 같은 농기구를 만들었다. 서당 훈장님도 물푸레나무나 싸리로 회초리를 다듬어 아이들의 졸음을 쫓아냈다. 강원도에서는 설피를 만드는데 이 나무를 사용하였다. 오래 전부터 죄인을 심문할 때 쓰는 몽둥이는 거의 모두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푸레나무는 워낙 단단하고 강해서 연장의 손잡이나 야구 방망이 그리고 악기의 몸통을 만드는 데 쓴다. 

 이렇듯 쓰임새가 많은 물푸레나무이지만 집단으로 자라는 모습을 서울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바람이 있다. 꼭 물푸레나무가 아니어도 좋다. 나무들로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마을을 만들어볼 순 없는 것일까? 싱가포르는 국가의 비전 중 하나가 ‘정원 속의 도시(Garden of City)'란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시, 아니 은평구도 그런 멋진 비전을 상상해 볼 수 없을까? ‘공원의 도시(Park of City)’, ‘숲의 도시(Forest of City)’.

 무더운 날, 숲을 상상하며 헉헉거리게 만드는 무더위를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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