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자리에서 편히 빛나소서…

 노회찬 의원 (사진출처:한겨레신문)

고인의 소식을 접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란공원의 일정을 마친 지금도 아무 생각을 못하겠습니다. 여전히… 여전히…

그가, 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꺼나

석남 최항 석남꽃(소연가) 유래설화로, 서정주의 '소연가'에 노회찬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가사처럼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석남꽃을 꽂고 함께 30년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노. 회. 찬

촌철살인, 언어의 마술사, 최근에 노르가즘이라고 불리는 자. 시사평론에 출연하면서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지만, 저에게 노회찬은 힘들고 핍박 받은 민중과 노동자를 위해 당사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력한 선구자로 기억합니다.

2004년 총선 민주노동당을 알리는 심야토론에서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져, 판을 갈대가 이제 왔습니다.” 노회찬이 대중에게 첫 인식되는 시작이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국회입성에 견인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정치상황에서 어록이 그를 통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그를 기억합니다.

진보정당이란 경도된 정치인식을 대중적으로 끌어올린 그가 정치인 노회찬이었습니다.

제가 먼발치서 바라보다 처음 이야기를 나눈 장소는 안타깝게도 2008년 총선에서 분당된 진보신당의 노회찬과 심상정의 낙선 인사였습니다. 

수도권의 한나라당 돌풍에 휩쓸려 석패한 진보신당의 노회찬·심상정 후보와 통합민주당의 김근태 후보 등 진보적 성향의 후보들에 대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프레시안 2008-04-11).

이날 명동에서 진행된 즉석사진행사에서 본 그의 얼굴은 고뇌에 찬 얼굴이었습니다. 하필 이 행사가 이랜드계열 옷 매장 앞에서 열려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기파업 중이어서 더 애잔한 느낌이었습니다.

TV 토론도중 밝은 표정과 달리, 카메라가 옮겨졌을 때의 어두워지는 상반된 그였습니다. 호빵맨처럼 밝은 모습일 때는 시민과 이야기할 때, 연설할 때, TV 토론에 나갈 때 등 대중과 접할 때입니다. 위트 있는 비유와 명랑한 말솜씨와는 달리, 그를 사석에서의 그 모습도 같았습니다. 당원들과 뒤풀이할 때는 즐겁지만 둘이 있으면 고뇌하고 사색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노회찬 이었습니다.

원래 그런 성격인가 했었는데, 추후 알아보니, 그는 항상 사색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짊어진 진보정당과 그가 대변한 수많은 약자를 대변하고 있다는 책임감은 습관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표님처럼 말을 잘하나요?

이 질문을 그에게 던졌을 때, 선배로서 진지하고 차분히 격려해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 본인도 원래 말을 너무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중요한 것을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정치인으로서, 지금의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 상황을 위해 할 것을 모색하고,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답은 나온다고 했습니다. 

쌍차, KTX, 용산참사, 삼성반도체, 세월호 등 수많은 민생의 현장에서 그는 사색하였습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이후 새롭게 만든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공동대표를 수락연설에서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로 시작하는 말속의 투명인간 이야기에서 그의 정치 신념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X파일사건으로 의원직이 상실할 때 국회를 떠나면서도,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30일 단식할 때도 그가 묵묵히 갈 수 있었던 것이 이런 집념과 책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을 사랑한 정치인'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라고 했습니다.

85만원 박봉의 투명인간을 위한 정치를 이제 더 이상 못한다는 그 심정을 생각하니 얼마나 괴로워했고 미안해했을까 말문이 막힙니다.

夜深星逾輝(야심성유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 

신영복 선생님을 존경했던 고인이 노원병 선거이후 시민소통공간인 마들연구소를 만듭니다. 첫 강사도 신영복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사용하신 이 말을 노회찬 의원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난다.’ 사석에서 제가 많이 들어 기억하고 저 또한 그가 진보정의당 대표로 은평 송년회에 오셨을 때 인사말에도 사용했었는데 좋아했던 그분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진보정당의 존재가 일상에서는 표시나지 않지만 사회가 힘들고 어두울 때 선명하게 보이는 별 같을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그가 없는 정치현실에서 노회찬은 우리 서민에겐 별과 같은 존재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았던 세상의 투명인간을 대변한 정치인, 문화인, 그리고 평화인인 노회찬.

이제 그 별을 현실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또는 기억 속에 묻어야합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가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보내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당신의 말씀처럼,

본인은 멈추지만, 이제 그 길을 당당히 나아가려합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편히 빛나소서…
이제 
그 자리에서 지켜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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