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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꾼다생태보전시민모임 민성환 공동대표를 만나다
  • 박은미 기자
  • 승인 2018.07.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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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공동대표

생태보전시민모임이 첫 발을 뗀지 20년이 됐다. 뭇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길을 묵묵히 걸었다. 꿈 꾼 일을 다 하진 못했지만 가진 역량의 몇 곱의 일을 해냈다. 생명운동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 사람과 뭇 생물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이 선행되어야 함을 기억하며 걸어온 길이었다. 그 길엔 화려함도 없었고 충분한 보상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해낸 일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뭇 생명을 수없이 살려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 곁을 지키고 중심이 된 민성환 대표를 만나 미처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눠보았다.

생태보전시민모임(이하 생보시)이 출발한지 20년이 되었다. 소감이 남 다를 거 같다.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10주년 때도 지역단체들에게 떡을 돌리는 행사정도만 했는데 이번 20주년은 활동가들에게 남다르게 다가온 거 같다. 특히 재정상황이 안 좋아서 이번 기회에 후원을 좀 받자는 숨은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다. 생보시 뿐만 아니라 풀뿌리결사체의 비영리 조직들의 상황이 안 좋다. 앞으로 10년, 20년을 어떻게 걸어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한 단체가 20년간 활동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생보시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나?

은사님이 현장 생태학자인 시립대 이경제 교수님이다. 산을 깎아 골프장, 스키장을 만드는 걸 보면서 안타까워하며 현장에서 환경을 지키고 생태를 보전하려고 애쓰셨다. 기존에 있는 환경단체가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교수님이 직접 생태관련 단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며 현장 활동가들과 당시 대학원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 때 만난 분이 여진구 차장님과 윤주옥 선생님이다. 여진구 차장님은 안타깝게 고인이 되셨고 윤주옥 선생님은 지리산에서 생태운동을 하고 있다.

그 때 민 대표님은 생보시 활동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대학원 석사과정이었는데 교수님이 하시는 거 옆에서 보고 같이 구상하고 역할분담도 하고 사람일손 필요하면 가서 돕곤 했다. 대학원 다니면서 박물관 기획하는 일을 했는데 서대문자연사 박물관 만들 때 전시물을 기획하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대학원생 신분이라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좀 남으면 생보시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했다. 그 때 평생 뭐하면서 살까 고민을 했는데 프리랜서라는 게 안정적이지도 않고 적성에 맞지도 않았다. 그런데 생보시에서 자원봉사 활동하는 건 재밌어서 재밌는 일하면서 평생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당시 생보시 여진구 차장을 찾아가서 일하고 싶다고 하고 2000년 1월 2일부터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 때 활동가 월급이 50만원 정도였다. 임금이라는 말 대신 생계비라고 했다. 대학원 졸업생이 단체에서 일하겠다고 하는데 월급을 충분히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걱정이 됐을 거다. 그래도 그 돈 받고 저축도 하고 결혼도 했다.

생보시가 은평에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생보시는 자연생태계와 생명을 대변하는 활동을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생태운동 단체다. 꼭 은평에서 활동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터를 잡은 건 아니고 창립 당시 사무실을 구해야 하는데 은평이 가장 임대료가 쌌다. 진관내외동, 구파발은 주변에 산과 녹지가 많아 우리가 지향하는 생태활동을 하는 데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사무실은 낸 곳은 물푸레골이었다. 주민들이 뒷산에 물푸레나무가 많다고 그렇게 불렀다. 동네 정서나 분위기가 시골마을 같았고 주민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총각은 뭐하나? 애 좀 잠깐 봐 달라, 감자 삶았으니 먹으라’고 갖다 주셔서 되게 좋았다. 그 뒤로 방아닷골로 사무실을 옮겼다 2002년 즈음 기자촌으로 다시 이사를 했다.

기자촌에는 몇 년 있었나?

3년 정도 있었다. 계속 있고 싶었는데 은평뉴타운 개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구파발, 물푸레골에 있으면서 아무리 저렴한 집이라고 해도 집주인 상황에 따라 이사를 다녀야 하니 고민이 됐다. 자료도 많고 책도 많은데 이렇게 돈을 쓸 바에야 빚내서 집을 사고 이자를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자산화전략을 선택했다. 

자금을 모으고 집을 담보로 잡아 집을 하나 사서 들어갔다. 단독주택이었는데 내부공간은 사무공간으로 쓰고 앞뜰이나 마당은 생태적 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앞쪽 빈터를 일궈서 자생 화원, 자생 식물원을 조그맣게 만들고 멸종위기 식물을 심어놓고 해설도 하고 마당에서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는데 재개발지역에 포함돼서 밖으로 나왔다.

생태보전시민모임 창립 20주년 기념 후원의 밤에서 생태보전시민모임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하고 있다.

생태 모니터링,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몇 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는 강동에 4명, 마포에 4명, 은평에 2명이 활동하고 있어 모두 10명의 활동가가 있다. 

흩어져있어서 그렇지 작은 조직은 아니다. 생태활동을 은평에서만 하는 게 아니니까 여러 군데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큰 단체는 어떻게든 부패한다고 보고 우린 작고 강한 단체를 원했다. 일이 많으면 일을 쪼개고 그 조직을 네트워킹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25개 자치구에 생보시와 같은 조직을 만들고 이것을 네트워킹 하자는 전략이다. 강서, 강동, 마포는 초기부터 고민을 하고 역량을 집중했던 곳인데 3군에 만드는데 20년이 걸렸으니 남은 22곳을 만들려면 100년쯤 걸릴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전환마을을 만드는 게 생보시 미션으로 알고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 이렇게 많은 은평에서 전환마을이 가능할까?

은평에서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못할 거다. 지금은 여러 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녹지율이 서울에서 4번째로 높고 풍부한 곳이다. 사람들이 갖는 공동체라든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건강하고 시민사회활동, 마을공동체 활동, 민관협치 등이 이뤄지고 있어 생보시가 지향하는 비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잠재력이 그렇다는 거고 전환마을로 가는 건 다른 과제인 거 같다.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생보시 활동에서 1순위 사업은 무엇인가?

서식처를 보전하는 게 제일 중요한 사업이다. 서식처는 삶터다. 우리도 마을이 있고 집이 필요한 것처럼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들도 성격에 맞는 집이 필요하다. 남아있는 서식처가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운동의 영역이다. 지금은 열심히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2002년부터 ‘작은 산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작은 산 27곳을 조사해보니 작은 산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점에서 위험한가?

서울은 녹지비율이 26%로 높지 않다. 이 26%도 분석을 해보면 외곽에 있는 큰 산들, 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등이고 사람들이 사는 삶터 주변에는 산들이 많지 않다. 가까이에 있는 산이 사람들에겐 소중한 공간인데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보니 숲이 망가진다. 이렇게 소중한 작은 산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삶의 질도 낮아질 수 있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그게 ‘작은 산 살리기 운동’이었다. 그 뒤로 전국의 작은산을 살리기 위한 활동, 컨설팅 등을 많이 했다.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공동대표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있으면서 생태를 지키고 보전한다는 게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즐거운 불편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불편이 즐거울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하는 행동이 생태계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 나쁜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거다. 다만 너무 작고 소소한 일까지 다 신경 쓰고 스트레스 받는 건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엔 무던해질 필요가 있다. 본인이 감당할 만큼 실천해나가는 거, 그걸 꾸준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게 습관이 되면 즐거운 불편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볼 때는 뭘 저렇게까지 하나 하겠지만 본인에게는 불편하지만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생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연과 필연 속에서 사는데 대체로 우연의 결과물이 현재의 내 모습 같다. 예전에 은사님이 본인이 만든 단체에서 박봉 받으면서 활동하는 모습이 안쓰러워보였는지 서울시 공무원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2,3일 고민하다가 생보시를 선택했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들판, 강, 하천 이런 곳에서 쌓였던 정서적 교감이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거 같다. 

요즘엔 생태보단 지역운동에 더 관심을 갖는 거 같다.

딜레마다. 생보시에서도 전략적으로 생태계 보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협치관련 일을 안했을 거 같다. 지역사회현안과 관련된 연계, 네트워크, 협력 이런 과정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 것들이 하나 둘 많아지다 보니 단체 활동가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하다. 합리화를 하자면 협치영역이 확장되고 안착되면 생태환경, 지속가능성, 전환 이런 영역에서도 협력이 원활해지지 않을까 한다. 당장은 우리가 신경 못쓰고 집중하지 못하지만 큰 판을 만들고 흐름을 만드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다고 본다.

은평에서는 생태관련 현안은 무엇인지?

은평새길이 추진된다면 당장 큰 현안이 될 거 같다. 왜 은평새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반대 입장이어서 북한산살리기은평시민연대가 다시 활동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장기로 본다면 은평구가 녹지율이 높다 해도 주로 외곽에 있어 도심 내 녹지공간을 확보하고 녹색도시, 정원도시를 만들어내는 과제가 있다. 녹번천, 불광천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도 과제중 하나다.

전환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건 더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생태적과제, 에너지전환측면에서의 과제, 사람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서의 과제, 먹거리 과제 등을 아울러서 고민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생태계보전, 생물다양성 보전, 생태교육활동들, 보호관리 등으로 생태운동이 분화되면서 생태교육은 물푸레 생태교육센터로, 도시농업, 먹거리 문제는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으로, 마을공동체 영역 안에서 가치증진, 관계망 형성은 물푸레카페를 중심으로 에너지관련해서는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으로 역할이 나눠지고 있다. 전환마을은 아직 활성화가 안됐지만 전환마을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흐름을 만들려고 한다. 개별과제가 해결되고 연결되었을 때 그것이 전환마을인 것이고 그게 바로 궁극적인 생보시의 목표가 될 거다. 수십 년 걸릴 거라고 본다.

생보시 활동에서 보람된 일은 무엇인지?

생태보전활동이 구체적 결과물로 나올 때다. 은평뉴타운이 개발되면서 맹꽁이도 사라지고 습지도 사라졌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문제제기를 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바로 진관사 앞 야생생물보호구역이다. 이 공간만은 습지로 보전하자,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서울시를 설득했다. 은평구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생보시 활동의 결과물이다. 

또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을 만들어 낸 것도 큰 성과다. 국궁장이 될 공간을 수년간 노력해서 바꿨다. 과정도 주민참여방식으로 진행하면서 공간을 만들어냈다. 위탁을 다른 데서 받긴 했지만 지역에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은평이 한 단계, 한 단계 변화해왔던 것들, 어린이잔치 한마당, 은평상상축제, 은평누리축제, 협치 이렇게 확장돼오는 과정에 생보시가 나름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단체보다 훨씬 열심히 역할분담하고 노력했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작게는 행사기획을 하고 프로그램을 할 때 시민들이 보여주는 환한 모습들, 웃음소리, 고맙다는 말, 좋은 일 한다는 반응이 보람을 느끼게 한다. 가끔은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나를 긍정적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고 결과도 있어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생보시는 고민이 많다. 지속가능한 조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더 많은 활동가들이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고민, 더 중요한 건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환마을 만들기를 선언했는데 정말 이 경로로 가고 있는지, 성과가 있는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이 무엇인지 등 정말 고민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20년 정도 활동을 해왔는데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다. 만약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미션은 뭔지 찾아야 하는데 아직 정리가 되진 않았다. 은평지역사회로 보면 시민사회를 어떻게 하면 단단하게 만들지도 고민이다.

전하고 싶은 말은?

비영리 영역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나 결사체들이 더 많아지고 더 건강해지고 튼튼해지고 지속가능하게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영역에 시민들이 더 관심을 갖고 역할을 나누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면 좋겠다. 

최소한 1시민 2단체 후원회원 가입하기, 시간 날 때마다 그 단체에서 자원봉사하기가 일상화되고 문화가 되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본다. 그런 은평이 될 수 있게 관심 가져주길 부탁드린다. 주위에 보면 그런 단체들, 생보시나 은평시민신문을 포함해서 많이 있으니 관심 갖고 후원해 주시면 좋겠다.

박은미 기자  yasodhara@e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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