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많은 청소년들이 키가 한장 많이 자라는 시기의 1~2년 후에 집중적으로 어지러운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친구들, 중고등학생들이 어지럽다는 얘기를 하면서 진료실에 자주 옵니다. 
특히 여학생들이 많죠. 
대체로 “빈혈인 것 같아요”라고 말문을 엽니다.

“저 빈혈인 것 같아요.”
“생리양이 많나요?”
“음, 아니요, 어지러워서요.”

물론 어지러움이 빈혈의 증상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어지러운 모든 친구들이 빈혈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나도 한번 어지러워서 쓰러져봤으면 좋겠다' 싶은 정도로 튼튼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이마에 손을 짚고 '아'하는 신음을 내며 살포시 눈을 찡그릴 듯 감는 여배우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었지만, 도통 어지럽지 않은 겁니다.  왜 나는 이렇게 어지럽지도 않고 생생하기만 한 거야, 그런데 저 친구들은 왜 툭하면 어지러운 거야? 정말 궁금했죠.

진료실에 어지러운 친구들이 오면 면밀히 살핍니다. 진짜로 빈혈인 것은 아닌지, 부정맥이나 뇌전증 등 다른 문제는 없는지 꼼꼼하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검사를 한 다음,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물리 수업이 시작됩니다.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 알아요?”

앉아 있을 때의 심장의 높이보다, 일어서게 되면 심장의 높이가 높아지게 됩니다. 30~40센티 정도 높아진 심장이 다리에 있는 혈액을 끌어당기려면, 순간적으로 그만큼의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하지요. 

심장의 박출량이 커지거나 박동 속도가 빨라지거나 해서, 운동에너지를 만들어줘야 혈액의 위치에너지로 변형되게 됩니다.(왜냐하면 에너지는 보존되니까요)

그런데 내내 앉아만 있던 친구들의 심장이 갑자기 더 많은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내기가 힘들어서, 순간적으로 심장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혈액의 양이 부족해지게 되고, 이 순간 눈앞이 하얘지거나 캄캄해지며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앉아 있을 때의 자세, 서 있을 때의 자세, 그 때의 각각 심장의 위치, 혈액이 올라가야 하는 거리 등을 종이에 그려가며 이렇게 물리 수업을 하고 나면, 계면쩍어하는 친구들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제가 좀 운동을 안 하긴 하죠.”

청소년기에는 어지럽기 쉽습니다. 키 성장이 부피 성장보다 대체로 먼저 일어나게 되는데, 여학생들의 경우 10대 초반에 키 성장이, 생리가 시작되고 난 후인 10대 후반에 부피 성장을 주로 하게 되고, 남학생들도 10대 후반에 키 성장, 20대에 들어서야 부피 성장을 하게 됩니다. 

우리 심장의 근육은 부피 성장 시기에 주로 자라나게 됩니다. 따라서 키 성장이 쭉쭉 이뤄지는 시기에는, 심장 근육량이 빠르게 자라는 키를 따라잡지 못해 머리로 혈액을 공급하는 일이 힘들어지는 때가 종종 생깁니다. 
게다가 이렇게 키가 집중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앉아 있는 생활을 하기에 더 문제가 되지요. 

심장도 근육이라 숨을 헐떡거리면서 뛰어야 잘 자라게 되는데, 공부다 입시다 해서 제자리에만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 정말 많은 청소년들이 키가 한장 많이 자라는 시기의 1~2년 후에 집중적으로 어지러운 증상을 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지러울 틈 없이 자랐으니, 오죽 많이 뛰어다녔나 봅니다. 혹은 키 성장이 별로 안 이뤄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청소년의 어지러움은 뇌혈관의 문제, 뇌전증, 부정맥, 빈혈 등으로 인해서도 발생할 수 있으니, 병원에서 꼭 상담을 받되 큰 문제가 없다고 하면 열심히 뛰어 놀아야 해결된다는 거,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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