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떤 재해자가 어디에서 일을 했는지를 찾고 있다.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단지, 나는 노력을 할 뿐이고, 몇 가지 시도가 실패했고, 마지막 남은 희박한 수를 노려보고 있다.

산재신청을 하면서 ‘사업주 모름’으로 신청을 한 적이 있다. 그 재해자는 도로건설현장에서 신호수로 일을 했다. 도로건설현장에 차량을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보통 요즘은 사람이 아닌 마네킹을 세워두는 경우도 많다.

신호수로 일을 하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다리와 머리를 크게 다쳤고, 기억도 잘 못하시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로 우선 처리를 하고 있었지만 최종합의를 보지 않았고, 사고가 나고 2년이 넘은 시점에 산재처리를 하려고 따님과 함께 찾아왔던 것이다.

일하다가 다친 것은 명확하고, 자동차 보험과의 구상권의 문제는 있겠지만 그것은 근로복지공단과 자동차보험과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 산재인정과 장해등급 등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재해자가 사업장이 어디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인력회사를 통해서 신호수로 일을 했고, 첫 날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사고는 명확하니, 어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나는 그러면 당연히 자동차 보험 담당자는 어느 회사인지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동차 보험 담당자는 회사는 알지 못하고, 가해차량의 차주가 누구인지만 알고 있다고 했다.

사고는 있고, 일하다가 다친 것은 명확한데, 도대체 사업주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하며 차일피일 미루다 나보다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이 여러 정보망을 통해서 잘 알아내겠지 생각하고, ‘사업주 모름’으로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사건 담당자는 황당하다는 뉘앙스였고, 나는 미안하지만 잘 찾아봐 달라고 했다. 하지만 1, 2주가 지나도 별로 진척이 없었고, 결국 내가 낑낑매고 찾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사고 난 현장이 어디인지를 가봤다. 그리고 도로공사라는 것을 착안했다. 도로공사는 국가나 지자체가 담당할 것이고, 국가나 지자체가 발주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재해일이 있으니 그 날짜에 그 곳의 공사를 담당한 업체를 정보공개청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담당공무원과 통화를 한 후에 건설업체를 찾았다. 건설업체가 어디인지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 알려주고, 건설업체 담당자와도 통화를 했다. 건설업체 담당자는 2년 전의 사고가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됐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뭔가 ‘당했다’는 감정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재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다행히 산재로 인정이 됐다. 그리고 재해자는 정신질환과 다리의 장해로 장해연금을 받게 됐다.

인력회사를 통해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어느 건설업체 소속으로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건설현장의 산재는 원청으로 적용이 되는데, 오야지 이름만 안다든가 협력업체 이름만 아는 경우도 종종있고, 이 재해자처럼 머리를 다쳐서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업무상 사고 이외에 업무상 질병인 경우는 유해물질을 어떤 사업장에서 발생시켰는지 또는 여러 사업장 중에서 어떤 사업장에서 가장 많은 유해물질이 노출됐는지에 따라서 사업장이 적용된다. 요즘에는 기본적으로 건설현장도 고용보험 가입을 하여 노동이력이 남아서 추적을 할 수 있기는 하다.

재해가 명확하지만 사업장이 어딘지 몰라 사업장을 찾아 헤매고 있는 지금, 이 사건이 생각난다. 그 때처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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