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양심 고백으로 사업주의 거짓이 드러나다

유족은 군복무 중이었고 망인은 아들이 군대에 간 후에 이혼을 했다. 유족은 군복무 중에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회사의 거짓 진술로 인한 산재 불승인과 그 결과가 뒤집히는 것도 보게 됐다.

동네마트에서 일하던 망인은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가족들과도 소원했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동네마트는 남자직원 7~8명, 여자직원 7~8명 정도 되는 규모였다. 그 날은 마트에서 남자직원들만 모여서 회식을 했다. 여자직원은 대부분 주부였고 늦게 남아서 회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전체회식에만 참여했다.

2층 회식자리에 사업주는 뒤늦게 왔다. 남자 직원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회식에 참석했다. 망인은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났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한참을 지나도 사람이 오지 않아 찾아보니 계단에 떨어져 있었다. 119를 불러 인근병원에 갔지만 살 수 없었다.

사업주는 본인은 돈 계산을 해주러 갔던 것일 뿐 그 모임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고 했다. 산재 신청을 했지만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지 않았기에 불승인이 됐다.

내가 심사청구 사건을 맡게 됐다. 처음 신청했던 자료, 불승인 이유 등을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았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는 회식이었는지, 망인이 그 자리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지 등이었다.

사업주도 경찰서 진술에서 ‘회식’이라고 진술했고 남자 직원들 중에서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했던 것도 주장했다. 회사 동료를 만났고 전화통화도 하면서 자료를 모았다. 사업주도 안타깝다며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우겠다고 했다. 서류는 다 갖추었지만 결정적으로 사업주가 지시를 내렸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그런데 퇴직한 동료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날 회식자리에 자신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사업주가 1일 정산을 했다는 것이다. 날씨가 무척 더워서 마트에서 하지 않고 인근 호프집으로 나와 정산을 했다는 것이다. 동료는 가만히 있으려니 양심에 찔려서 얘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업주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좁은 업계에서 자신의 밥줄이 끊긴다는 것이다.

고민을 했다. 그냥 동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1일 정산’을 했으면 명백하게 일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려준 동료의 처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번 청구 결과를 보고 다음 재심사나 소송을 할 때 추가 진술을 부탁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가기에는 마음이 찜찜했고 유족에게도 미안했다.

사업주를 찾아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업주는 사실을 인정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처벌을 받을 것 같아 거짓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술을 번복하면 처벌을 안 받는지도 물었다.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한 것에 대해 사업주의 진술에 많이 의지하는 이 행태에 진절머리가 났다. 사업주는 자신이 거짓진술을 했고 그날 ‘1일 정산’을 했다는 추가진술서를 적어줬다.

심사위원회에 말년 휴가를 나온 유족과 함께 구술심리를 하러 갔다. 심사위원들은 서류를 다 읽어봤다고 했다. 그런데 ‘추가진술서’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해 따로 복사해서 나눠줬다, 심사위원들은 그제야 납득을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니 어쩌면 당연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겨우 산재로 인정이 됐다. 사업주의 거짓진술로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어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본다. 가까운 동료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그 유족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도 생각해본다.

진실을 알려준 동료에게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도 인정이 됐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해한다는 답을 들었던 것 같다. 종종 그 마트 인근을 지날 때가 있다. 그 사건이 생각나고 그 가족이 생각나고 그 사업주와 진실을 알려준 동료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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