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모야, 가을에 알찬 나락으로 만나자’

“못줄 넘어갑니다”.
“안돼요. 아직 다 못했어요”
“줄 넘길테니 그냥 간격 맞춰 얼른 꽂으세요. 그래야 빨리 끝나요”
모내기에 속도를 더하려는 못줄잡이와 모내기 초보가 말을 섞는다.
“못줄잡이가 악덕 마름이었네. 좀 살살합시다”
“맞아 맞아 악덕 마름. 호호호 깔깔깔”
다른 참여자들도 거기에 장단을 맞추면서 논 가운데가 시끌벅적하다.

기온도 열정도 펄펄

한낮 최고기온이 29도를 기록한 지난 5월 26일, 초여름 더위 속에서 모내기를 했다.
참여자는 40명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신청자가 50명을 웃돌았는데 당일 이런저런 사정으로 40명만이 체험에 참여했다. 작년에 여러 번 체험을 하면서 인원이 많아야 30명 남짓이었던 것에 비하면 역대급 규모였다.

전세버스를 이용해 오후 2시경 김포 논에 도착했다. 일대 너른 논 대부분이 모내기가 끝나 파릇파릇했다. 우리 논 1200평 중 1000평은 오전에 기계를 이용해 작업이 끝나 황토빛 200평만이 우리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심을 모부터 살펴보았다. 모판을 만들 때 싹이 너무 길게 자란 볍씨가 들어가 있어 제대로 자랐을까 계속 마음이 쓰였다. 역시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간격이 듬성한 것도, 누런 빛을 띤 것도, 키가 너무 작은 것도 있었다. 걱정을 토로했더니 올해 김포 지역 모들이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단다. 5월의 급격한 기온변화가 못자리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했다. 걱정은 되지만 그냥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하는 거 잘 보세요’

올해는 물푸레생태교육센터가 3년째 습지를 지키며 논농사를 짓고 있는 김포 금개구리 논에 합류해 같이 하는 터라 우리 모내기 행사 때도 물푸레에서 참가한 아이들 교육을 맡아주었다.

아이들이 먼저 모내기를 시작했다. 물장화를 신거나 그냥 양말만 신은 채 논으로 들어갔다. 일렬로 선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모를 꽂는데 제법이었다. 한 줄 꽂고 2발 뒤로 물러서 또 줄맞춰 심기를 다섯 차례 했다. 어린 아이들이 폭 10미터가 넘는 논에서 다섯 줄이나 모를 심은 것이다. 옷은 물론 손도 발도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힘들다고 투정하는 아이가 없었다. 오히려 지켜보는 어른들을 향해 ‘우리 하는 거 잘 봤죠?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하는 태도였다.

논농사 3년만에야 우리 못줄 갖게 돼

아이들은 모내기한 뒤 수생생물 관찰을 위해 생태 선생님과 둠벙으로 가고 드디어 어른들이 논에 입장했다. 모내기가 처음인 사람부터 3년차가 최고 경험자인 사람들까지 일렬로 섰다. 양 끝에는 못줄을 잡아 간격을 맞추어주는 못줄잡이가, 뒤에는 모를 나눠 주는 모쟁이가 섰다.

긴 줄에 간격(15~20㎝)을 맞춰 실을 묶어 만드는 못줄은 모내기에는 꼭 필요하다. 여태껏 남의 못줄을 빌려 썼는데 이제 우리 못줄을 만들어 쓰니 논농사 3년만에 못줄 독립을 이뤘다. 앞으로 더 넓은 논에서도 쓰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담아 100m가 넘는 못줄을 만들었다. 그 줄을 다 풀어 모내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뒤늦게 도착한 참여자들도 거침없이 논으로 들어왔다. 모를 서너 개씩 잡아 손가락 두 마디가 안 되는 3㎝ 정도 깊이로 꽂아 고정시키도록 요령을 설명하니 그 자리에서 바로 모를 심었다.

모내기에 간식과 농주가 빠지면 ‘섭섭’

이번 김포논에는 용정찰이라는 찰벼 1종에 수확이 많은 다다조, 붉은 쌀알의 자광도, 검은 빛을 띠면서 키가 큰 북흑조 등 메벼 3종을 심었다.

모를 심으며 황토빛 논이 파릇함으로 채워질수록 ‘아이고 내 허리’ ‘파스가 필요해’ 등의 엄살 아닌 엄살이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 처음에는 이걸 언제 다하나 싶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끝이 보였다. ‘눈이 게으르지, 손은 부지런하다’는 옛 어른들 얘기에 수긍하며 마지막 힘을 냈다.

1시간 반 가량 몸을 써 일한 뒤에는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박, 떡, 전, 두부김치 와 막걸리 한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렇게 또 여럿이 생명을 키워내는 여정의 한 발을 같이 뗐다.

모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게 마음에 좀 걸린다. 하지만 지금은 뜨거운 햇살과 바람, 가끔씩 내려줄 비에 기대고, 흙과 벼의 생명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개입이야 아주 작은 부분일 터다.

그나저나 어린 모들 모두 논에 잘 정착했길, ‘뜬 모는 없어야 할 텐테, 뜬 모 잡으러 갈까 말까.’, 마음은 가라는데 몸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 한다. 이래서 문전옥답이라는 말이 나왔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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