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보석같은 추억이 쌓여 있다

702번 버스를 탄다. 시계입구 가게 앞 검문소에 내린다. 식당 몇 군데를 지나면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끝난다. 도로 끝에 주차장이 있다. 그 사이에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그곳에서 봉산이 시작된다.

처음엔 조금 오르막길이 있다. 어른들끼리 간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오르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짧은 오르막 뒤에는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을 지나면 이런저런 식물과 곤충, 동물을 만난다. 나무나 꽃에 밝은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영 깜깜이다. 처음 갔을 땐 정말 하나도 몰랐다. 그저 이건 나무, 이건 식물, 저건 곤충. 이런 식이었다. 그래도 한 번 가고, 두 번 가니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봄에 가면 그늘진 곳에 고사리를 닮은 음지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른 여름에는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나기도 하고, 늦은 가을에는 길 위에 밤송이가 떨어져 있다. 함께 산을 오르는 이들이 알려준 덕분에 아는 것이 한두 개씩 늘었다. 이제는 봉산에 있는 뽀얀 꽃이 이팝나무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숲길은 평탄하지만 산길이기에 내리막일 때도 있고 오르막일 때도 있다. 길이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걷기에 아주 어렵지 않았다.

아이와 처음 봉산에 갔을 때 아이는 갓 돌을 지난 때였다. 아이를 안고 걷기도 하고, 너무 힘들면 아이를 내려놓고 걷게도 했다. 아이 눈에는 돌멩이 하나도 개미 한 마리도 신기했나 보았다. 툭하면 멈춰 섰다. 처음엔 아이랑 같이 구경도 했다. 일행과 거리가 멀어지면 아이에게 그냥 지나치라고 재촉도 했다. 애가 닳을 즈음에 낡은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제법 넓은 터가 나타났다.

처음에 봉산 안의 넓은 터를 보고는 신기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경주는 산이 작고 가파른 편이었다. 경주 남산의 문화재 답사를 가게 되면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너른 바위라도 나오면 앉을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봉산의 넓은 터는 수십 명이 앉아서 수건돌리기 놀이를 할 수도 있는 크기였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신기한 것이 여러 개 눈에 띄었다.

나뭇가지를 모아서 세운 인디언 텐트 같은 것도 보였다. 돌멩이로 소꿉놀이한 흔적도 보였다. 넓은 터 한 귀퉁이엔 아이들이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게 나무에 줄이 매어져 있었다. 깊은 틈이 있는 길에 넘어진 나무를 타고 건너게 해둔 것도 신기한데 심지어 그 나무에 대패질이 되어 있었다. 얼핏 투박해 보이지만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손질도 되어 있었다.

봉산을 처음 알게 된 뒤로 한 해에 두세 번 갔다. 그리 자주 가지 않았던 덕에 봉산을 오를 때면 아이가 조금씩 자란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성장과 계절에 따른 봉산의 모습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처음엔 아이를 안고 낑낑거리며 걸어가 돗자리에 아이를 앉혀두었다. 그러면 아이는 아장거리며 돌아다녔다. 나무를 세워 만든 집에 들락거리고, 개미들이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가 조금 자란 뒤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곳에 가면 아이는 숲을 놀이터 삼아 신나게 놀았다. 갈 때마다 아이는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놀았다. 낑낑대며 줄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비탈진 흙길을 미끄럼틀 삼아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했다. 빗물 고인 물웅덩이에 돌을 던지며 즐거워했다. 잘린 나무 위에 돌멩이를 쌓아 탑도 만들었다. 진흙과 돌로 케이크를 만들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때로는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와서 시끌벅적하게 놀기도 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산에서 재잘거리며 노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내 손을 잡지 않고 씩씩하게 길을 걸어가겠지.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엔 아이와 함께 가지 않고 나 혼자 갈 것이다. 그즈음엔 추억이 한껏 더 쌓이지 않았을까?

봉산 안의 넓은 터를 누가 가꾸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혼자 했는지 여럿이 함께 했는지도 궁금하다. 이 글을 통해 그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열심히 가꿔준 덕분에 아이와 함께 숲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에게 보석 같은 추억이 생겼습니다. 많은 사람이 앞으로도 그곳에서 좋은 기억을 남기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직 봉산을 가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용기 내어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길을 아는 분들과 함께라면 더욱 멋진 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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