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무상의료, 전국민 주치의제도가 있는 쿠바 의사의 마을건강보고서를 보며

출처 :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최근에 어떤 분이 폴리코사놀이 고지혈증에 좋냐고 물어보셨어요. 폴리코사놀은 쿠바에서 고지혈증 약을 대체하여 개발된 약입니다. 쿠바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을 줄이기 위해 위험요인이 있는 국민들에게 의사들이 폴리코사놀을 배포하였고, 이 결과 심혈관계 질환을 국가적으로 많이 줄였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물론 폴리코사놀은 좋은 약이지만, 다른 나라의 연구에서는 이 정도의 효과를 나타내지는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왜 전 세계에서 유독 쿠바의 폴리코사놀만 이렇게 좋은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쿠바 사탕수수의 폴리코사놀이 특히 좋아서 그럴까요? (물론 쿠바는 전 국토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니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지요.)

바로 쿠바의 전국민주치의 제도 덕분입니다. 폴리코사놀을 그냥 먹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의사들(가정의, 주치의)이 집집마다 왕진을 다니며 국민들에게 폴리코사놀을 나눠주고,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교육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폴리코사놀이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나눠주었어도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효과가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저는 지난 3월 안식월을 맞아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모히또와 올드카, 푸른 카리브해가 넘실대는 흥겨운 살사의 고장이자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 오토바이 부르릉거리는 소리에 맞춰서도 춤을 춘다는 사람들이 사는 낭만적인 나라로 유명하죠.

하지만 의사들에게는 전국민 무상의료, 전국민 주치의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쿠바의 아바나 시티로 가서 작은 진료소를 방문하고 닥터 알레한드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닥터 알레한드로 선생님의 첫 인사는 이러했어요. 

“저는 혁명광장 의료지구 8번 진료소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는 닥터 알레한드로입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가족 수는 348가구이고, 우리 진료소는 1025명 마을 주민의 주치의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직접 쓰신 2017년 마을건강보고서를 보여주었어요.

마을건강보고서에는 마을의 주민 숫자와 성별, 나이대, 흡연율, 음주율, 비만율, 만성질환 유병률, 사망률과 사망원인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어요. 작년에 진행했던 금연 캠페인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도 적혀 있었고, 마을 방역사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적혀 있었어요. 심지어 작년에 우리 마을에서 누가 자살을 했는지도 적혀 있었어요.

이 건강보고서를 보면서 저는 ‘우리 마을 주치의 살림의원’이라는 이름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마을 주치의라고 하면 적어도 우리 마을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어떤 이유로 돌아가시는지를 쿠바 의사들처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저는 주치의가 되고자 하는 열의는 가지고 있지만, 주치의를 제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쿠바처럼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자면, 전 국민들이 특정한 주치의에게 나눠서 등록이 되어야 하고, 아플 때는 가장 우선적으로 주치의를 찾아야 하고, 주치의가 진료실에 찾아오는 환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진료실에 오지 않는 주민에게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왕진이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바로 주치의 제도로 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고령화 사회와 함께 매일 매일 높아지는 의료비, 많은 지출에도 불구하고 점점 낮아지는 의사-환자의 신뢰관계 등을 극복하려면, 어쩌면 주치의제도가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이 ‘주치의제도’에 대해서 같이 공부해보면 어떨까요?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에서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라는 책을 e-북으로 발간하여,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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