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엔카페 소모임 <무책임한 책읽기>

사진 제공 차익수

“차샘, 우리 독서모임 시작하는데 같이 할래요? 인문학 책을 주로 읽을 건데 발제하기, 읽어 오기 없어요. 그냥 와서 읽으면 되요.”
“그거 좋네요. 언제 하는데요?”
“마을엔 카페에서 일요일 오전 10시 반에 해요.”
“알았어요. 저도 할게요.”

7년 동안 몸담았던 교중미사 성가대를 날려버리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읽기 모임과 시간이 겹치는 오전 성가대를 그만두는 대신 새벽미사 성가대에 합류했다.

그 결정으로 일요일 삶이 바뀌었다. 성가대 연습과 미사가 끝난 뒤 같이 점심 먹으면 당연히 반주가 곁들여지고 술판이 길어져 결국 5~6시까지 2, 3차로 이어지던 일요일 풍경이었다. 아침 시간도 어정쩡하게 날리고 결국 하루를 뭐하며 산 건지 모르게 허비했던 날에서 무책임한 책읽기(이하 무책) 모임을 시작한 뒤로 일요일이 바뀌었다.

6시 성가대 연습을 시작으로 미사와 목욕 그리고 책읽기 모임과 점심 식사까지 오전에 끝났다. 오후에는 산책이나 등산을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영화를 보았다. 이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상쾌한 냉온욕도 하고 심도 있게 책 읽으며 어울려 점심을 먹고 또 다른 여가와 문화생활을 하는 판타스틱한 일요일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다. 살도 빠지고 찌들어 있지 않아서 내내 상쾌한 몸이 건강으로 이어짐은 당연한 결과였다.

모임을 구성하고 처음 모인 사람은 마을엔 카페의 활동가 몇 명이었다. 점차 인원이 늘어 지금은 은평에 살지 않는 사람까지 포함해 3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와 여러 직업군이 무책에 나오고 있다. 전라도 강진에서 문화계를 주름 잡다 은평문화에술회관 관장으로 온 혜숙 샘은 동네사람들과 섞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 모임에 나오기도 했다.

무책 모임원이 갈수록 늘어나 복잡하다는 말도 있지만 책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건 1/3은 결석 상태이기 때문이다. 모임의 이름이 <무책임한 책읽기>인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무책에서 맨 처음 읽은 책은 고병권의 <살아가겠다>였다. 이 책은 글도 좋았고 통찰이 깊은 좋은 책이었지만 연민이나 분노를 자아내는 글쓰기 방식이이서 처음에는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아! 내가 참 냉철한 이성타령하면서 이쪽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 장애 여성,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들의 현실과 고통에 대해 제 3자로서 가해자에 대한 이성적이고 본능적인 분노만 있었지 아픔을 같이 느끼는 감성, 영성적 차원의 공감은 거의 하지 않았고 훈련도 되지 않은 나에게 그 각성을 일깨워준 책이 무책의 첫 번째 책이었다.

책 읽기와 토론 의지가 충만한 사람은 한 권 후딱 읽고 얘깃거리를 준비해 와 토론하는 데 별 무리 없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종래의 책읽기 모임이 그래서 잘 깨진다. 무책에서는 읽어오기가 없다. 당연히 발제도 없다. 아예 책을 두고 다녀야 한다. 와서 읽고 싶은 만큼 돌아가며 읽는다.

읽는 중간에 아무나 ‘이거는 무슨 뜻이지?’, ‘아! 이거 얘기 좀 해봐.’ 하면 서로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 어떤 챕터는 그저 읽기만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한 문단, 한 문장에 대한 토론으로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한다.

이렇게 심도 깊게 낭독하며 읽는 데다 스무 명 이상의 눈이 책에 집중하니 하루에도 2-3건의 오탈자와 이상한 번역을 찾아낸다. 발견한 교정ㆍ교열 건은 즉시 해당 출판사의 페이스북 메신저로 전송해 출판사 편집팀의 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고병권의 책 읽기를 시작으로 현재 무책은 210차에 이르렀다. 참가비는 음료수를 마시면 5천원이고 점심식사까지 하면 1만원이다.

커피 값 4천원과 밥값 8천원을 쓰는 데도 50만원의 적립금이 유지되는 이상한 사태를 이해하고 싶으면 무책으로 오라. 1만원으로 차와 밥, 영화까지 해결되고도 적립금이 늘어나는 신기한 마을살이를 경험하고 싶으면 무책으로 오라.

여름이 시작되었다.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고 싶다면 국수를 삶아 오라. 콩국은 직접 만든 내가 쏜다.

<무책임한 책읽기>

모임 날짜 :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반

장소 : 갈현동 마을엔 카페

연락 : 카카오톡 stephanus62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