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北 ‘하나 되는 우리’

민통선 안 쪽에서 바라 본 북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 : 정민구>

열차의 궤처럼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서로 부딪칠 뻔한 위험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2018년이 들어서면서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새롭다.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바뀔 수 있는 남과 북의 관계였던 것이다. 파스칼이 옷깃에 새기고 다녔다는, ‘기쁨 기쁨 기쁨, 슬픔 슬픔 슬픔, 희망 희망 희망’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이제 한반도엔 ‘희망 희망 희망‘의 시기이다. 다시는 슬픔의 시기로 회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필자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소원하는 평화의 실개천들이 모여 강이 되고, 결국에는 거대한 바다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北의 문이 열리면, 저 굳게 닫혀있는 DMZ가 무장해제 되면, 두 발로, 야생동물처럼 이리저리 달려 다닐 것이다. 화약연기 뿌연 그 땅에 노루가 맘껏 뛰어다니고, 수달이 남과 북의 경계를 넘나들 듯이 그렇게 경계를 지우는 퍼포먼스를 하리라! 민소매에 민망한 팬츠에도 부끄럼 잊고 이리저리 달려보리라! 아니다, 먼저 개성까지 달려야한다. 평양까지 달려야한다.

그렇다. 평화통일마라톤이다. 임진각에서 개성을 오가는 대회도 좋고, 임진각에서 평양까지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도 좋다. 한나절 달려도 좋고, 밤새 달려도 좋다. 바람에 경계가 있는가? 바람에게 저 굳게 닫힌 문이 장애가 되겠는가? 바람이 지뢰밭 비무장지대를 두려워하겠는가? 바람에게 남과 북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바람처럼 오가고 싶다. 바람처럼 저 경계를 뚫고 싶고, 바람처럼 저 화염의 비무장지대를 날고 싶다.

14년 전, 그러니까 2004년 평화통일 마라톤을 기억한다. 임진각에서 출발, 파주 근교의 들판을 지나, 마지막에는 통일대교를 지나 남북출입사무소 앞까지, 그리고 다시 임진각으로 돌아나오는 105리 길이었다. 10월에 열리는 대회인지라, 구름없는 날이면 코발트색 진한 하늘에 눈이 부셨다. 달리는 길가에는 활짝 핀 코스모스가 주자들을 반겼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기운이 팔팔해서 주변도 살피고, 주자들과 얘기도 나누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주변의 코스모스를 만지기도 하고, 파란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37km 지점 즈음을 지날 때가 되면, 기진맥진해서 하늘이고, 코스모스고 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뿐이고, 그냥 멈추고 싶은 유혹뿐이었다. 마음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디 마음만 그런가? 마음을 담고 있는 몸은 더 그렇다.

바로 그 즈음이었다. 통일대교에 들어서고, 개성의 송악산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통일의 관문에 다달았을 때는 정신이 조금씩 새로워졌다. 어느 해엔가는 발길을 아예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멀리 뵈는 송악산이 선명했다. 놀랐다. 송악산이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 한숨에 달려버릴 것만 같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길은 겹겹의 장애물로 단단히 막혀있었다.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차량 행렬들이 줄지어있어야 할 길이었다. 들숨 날숨처럼 사람이 오가고, 차량들이 오가며 남과북이 호흡하는 문이었을 터였다. 어쩌다 저리 오랫동안 닫혀있는가? 대회 참가할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굳게 닫힌 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면, 여기서 개성까지 달려갈 수 있다면, 지친 다리에도 불구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돌아서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들어갈 수 없기에, 통과할 수 없기에...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저 굳게 닫힌 문을 뒤로하고 두 다리 흐느적 거리며 다시 돌아선다.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두 다리는 더욱 무거워진다. 더욱 침울해 진다. 머릿속에는 송악산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머릿 속에는 개성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가는 풍경이 아른거린다.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실망감이 찾아든다. 저문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 두 동강난 한 반도, ... 이런 생각들이 버무려진다. 언젠가 저 문이 열리면, 언젠가 우리를 가르고 있는 저 문이 사라지면, 맨 먼저 저 문을 지나 개성까지 멈춤없이 달려가리라! 아니 평양까지 달려가리라!

통일의 문에서 임진각까지 돌아가는 거리가 5km즈음 될까? 그러나 그 심리적 거리는 백리, 아니 천리도 더 될 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천근만근의 무게가 된다. 마음이 침울해지고 몸이 더 무거워진 까닭이다. 언젠가 北의 문이 열리는 그날이 오면 꼭, 꼭 지금 가지 못한 저 길을 따라 달려 가리라. 이제 그 문이 조금씩 열릴 기미가 보인다. 조금씩 열리는, 그 문을 고대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서로에게 다가가야겠다. 南은 北으로, 北은 南으로! 그리하여 南과 北 ‘하나 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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