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증상을 말하면 진찰 후에 안심하도록 “이제 그런 나이가 되어서 그래요”라고 얘기합니다.

예전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의 5살 어린 아들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요. 

그 선생님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자,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 엄마가 두 개로 보여.”
라고 한 겁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두 개로 보여. 저기 컵도 두 개로 보여.”
초점이 맞지 않아 물체가 2개로 보이는 현상, 복시. 선생님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엄마가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쁜 동안 아들에게 큰 병이 생긴 건 아닐까, 안과적인 문제, 신경과적인 문제 온갖 심각한 문제들을 상상하며 안과 교수님을 찾은 날, 다행히 아들을 꼼꼼히 살핀 교수님은 편안하게 얘기하셨죠.

“별 거 아닙니다. 눈에 초점을 풀어서 2개로 보이는 거예요. 다들 이맘때 많이 그래요. 그러는 나이가 있어요.”

아들은 ‘매직아이’놀이를 했던 겁니다. 큰 문제인가 싶어 가슴 졸이다가 ‘그러는 나이가 있다’는 설명에 얼마나 안심하며 지나갔던지요.

진료실에서 소아 환자의 엄마, 아빠들을 만나다 보면, 저도 “그러는 나이가 있어요”라는 설명을 종종 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할 때, 어지럽다고 할 때, 다리가 아프다고 할 때, 여기저기 요상한 증상들을 얘기할 때, 저는 진찰 후에 안심 하시도록 “이제 그런 나이가 되어서 그래요”라고 얘기합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이 느끼는 이상한 증상을 설명하기 시작할 때, 보호자들은 많이 놀래시지요. 한번도 머리 아프다, 어지럽다는 얘기를 하지 않던 아이들이 어지럽다며 뛰어다니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게 되니, 얼마나 놀라고 걱정스러웠을까요. 

하지만 두통이나 어지러움 같은 증상은 3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는 증상입니다. 혹은 느껴도 ‘머리가 아파’라고 특정해서 말하기 힘든 증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몸집도 좀 커져서 몸의 부위를 구별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특정 부위의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증상’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저는 심각한 문제일까 걱정도 잠시 하지만 또 얼마나 대견하게 느껴지던지요. 마치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처럼, 새로운 표현들도 배워가거든요.

마주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아이에게 “머리가 어떻게 아파요? 지끈지끈 아파요, 콕콕 아파요?”물었더니 한참을 고민하다 “꽉 누르는 것처럼 아파요”라고 대답할 때, 속으로는 하하하하 웃었답니다. 욘석이 벌써 이렇게 자랐어 하면서.

아이들도 자신이 느끼는 증상을 (있는 힘껏) 잘 표현하면서, 어떨 때는 곧 괜찮아지기도 하고, 혹은 어떨 때는 한동안 계속 느끼기도 하고, 어떨 때는 병원에 데려가자고, 어떨 때는 집에서 참아보자는 얘기를 듣기도 하면서, 자신의 몸과 가족들과 차차 관계를 맺어가게 되니까요, 그러는 나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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