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과 음나무 새순으로 맛있게 시작한 올 봄, 멋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분단과 전쟁을 원하는 잡귀가 아직도 설치고 다닌다면 ‘평화의 집’문설주 곳곳에 음나무 가시를 걸어 두리라.

저 먼 포항 시골에서 두릅을 보내오셨다. 두릅나무 새순을 보통 ‘두릅’이라 부른다. 매년 4월 초순이면 사과상자에 두툼하게 담겨 남쪽의 봄맛이 배달되어 온다. 해마다 나의 봄은 두릅의 쌉싸름한 맛으로 시작된다. 시골에 사과나무 적과를 하러 갔다 하천 둑방길에 줄 서 자라고 있던 두릅나무를 본 적 있다. 매년 새순을 아낌없이 내어주던 그들이었다. 생각보다 넉넉히 자라고 있어 안심되었고 고마웠다. 

두릅나무는 높이 3~4m 정도 자라는 나무로 나무치고는 높이 자라지 않는다. 가지나 잎자루에 거센 가시가 있는 게 특징이다. 보통 가시가 무성한 나무들은 잎이 맛있거나 연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포함해서 초식동물이 좋아한다. 나무도 살기 위해선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을 방어할 비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시가 무성한 이유다. 초식동물에겐 어느 정도 통할 것인데 불행히도 사람에게는 어림없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두릅을 즐겨왔다. 그 달의 할 일을 노래로 읊은 조선시대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오월령(五月令)에 나오는 내용이다. 

앞산에 비가 개니 살찐 향채 캐오리라 

삽주, 두릅, 고사리며 고비, 도라지, 으아리를 

절반은 엮어 달고 나머지는 무쳐 먹세 

떨어진 꽃 쓸고 앉아 빚은 술로 즐길 적에 

산채를 준비한 것 좋은 안주 이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두릅은 산채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다만 두릅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달라진 듯하다. 자연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새싹이 남아나지 않는다. 싹을 내밀자마자 잎을 펴볼 틈도 없이 싹둑 싹둑 잘려나간다. 한 번 뿐이라면 견딜만하다. 저장한 양분으로 다시 한 번 싹을 내미는데 이 마저도 두 번 세 번 싹이 꺾이면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 없게 된다. 욕심이 과하면 먼 훗날 두릅나무는 식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나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이제 음나무 새순이 도착했다. 매년 그랬다. 수고로움에 죄송하고 넉넉한 사랑이 고마울 따름이다. 음나무는 ‘엄나무’라고도 부르는데 두릅나무보다는 훨씬 크게 자란다. 25m까지도 자랄 수 있다. 북한산성 언저리에 있는 우리 동네 어느 집 마당에도 제법 큰 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 역시 어린 가지는 온통 가시로 빽빽하다. 무엇을 위함인가? 역시 새순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두릅과 음나무 새순으로 맛있게 시작한 올 봄, 멋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음나무는 오래전부터 잎이나 가지, 껍질을 나물이나 약재로 사용하였다. 봄에 꺾어 뜨거운 물에 데친 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새순은 참으로 맛있다. 어떤 이는 쌉쌀하고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끝내준다고 했다. 그러니 사람이나 초식동물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음나무로선 크고 무서운 가시로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가시 생김새가 하도 엄하게 보여 엄나무라 부르다가 음나무로 불리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음나무 가시는 줄기 껍질이 바뀐 것이라 불규칙하게 자라나는데 어린 가지일수록 더욱 빽빽하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가시가 나무가 자라 굵기가 굵어지면 차츰 없어진다는 것이다. 초식동물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자라면 굳이 가시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는 듯하다. 가시가 참으로 특이하다 보니 옛사람들은 음나무를 대문 옆에 심어두거나, 가시 많은 가지를 특별히 골라 문설주나 대문 위에 가로로 걸쳐 두어 잡귀를 쫓아내고자 했다. 험상궂은 가시가 돋아 있는 음나무 가지를 귀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위엄 있는 가시를 보면 나쁜 생각을 품은 잡귀신은 감히 집안에 들어설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음나무가 이렇게 벽사나무로 인식된 탓에 경남 창원시 신방리의 천연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된 음나무를 비롯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받는 곳이 50여 군데나 된다고 한다. 가물거리지만 어느 오래된 한옥마을에 갔다 문설주에 매달아 놓은 음나무 가지를 본 기억이 있다. 가시가 특징이긴 하지만 음나무 잎 또한 특이하게 생겼다. 물갈퀴가 달린 오리발처럼 생긴 큰 잎이라고 해야 할까?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모양새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오동나무 잎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가시오동나무라 부른다.    

음나무 목재 또한 황갈색의 아름다운 무늬가 있고 목질이 가볍고 연하여 가공하기 쉽다. 그래서 가구나 악기 등 여러 생활용구를 만드는데 널리 쓰인다. ‘금슬이 좋다’고 할 때의 슬(瑟)이란 악기는 앞판은 오동나무, 뒤판은 음나무나 밤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두릅과 음나무 새순으로 맛있게 시작한 올 봄, 멋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이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향한 단단한 디딤돌을 확실히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정말 좋겠다. 오동나무와 음나무로 만든 슬이란 악기로 회담장의 모든 이가 금슬 좋은 부부처럼 평화와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불러도 좋으리라.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평화와 상생보다는 분단과 전쟁을 원하는 잡귀가 아직도 설치고 다닌다면 ‘평화의 집’문설주 곳곳에 음나무 가시를 걸어 두리라. 회담장 주변 곳곳에 전국의 음나무 당산나무를 옮겨 심어 얼씬거리는 전쟁 잡귀들을 엄하게 꾸짖고 쫓아내리라.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염원이 현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