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풀이에만 치중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당시에 진행했던 수업시간 내용이 명징하다. 학생들의 반응이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문제집을 펼쳐 보면 왼편에는 작품이나 읽기 제재가 있다. 오른쪽엔 문제들이 가지런히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었다. 여백의 묘도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고등학교 수업시간은 50분이다.
 

그럼 어떻게 수업시간을 설계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문제풀이에만 치중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설계했다. 왼쪽 작품이나 지문을 대상으로 40분 정도 함께 감상하고 나눈다. 그 뒤에 문제풀이는 학생들이 스스로 풀어보는 시간 5분. 그리고 교사의 해설과 정답 풀이 5분 정도. 이런 방식으로 50분을 설계했다. 
 

나름 꼼꼼한 교재연구를 통해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려 했다. 또한 치열한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료에 대한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실제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을 설명해본다. 문제집 왼쪽 면에 ‘효도(孝道)'와 관련된 시조 작품 두어 수와 고전수필 지문이 앉혀져 있었다. 오른쪽 면에는 다섯 문항 정도의 문제들이 지면에 앉혀 있었다. 
 

아마도 수능시험이라는 대학입시에 초점이 맞춰진 수업이라면 우선 시조 작품을 하나하나 분석했을 것이다. 또한 작품에 사용된 표현 및 발상, 수사적 기교, 작품 배경과 관련된 고사 등등에 대해 설명하고 학생들과 문제 풀이와 정답을 찾아내는 기술을 배양함에 초점이 맞추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본질적이며 바람직한 수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계한 대로 수업을 진행했다. 사전에 작품 옆 날개에 메모를 해두었던 대로 지적 사고를 자극하기 위한 준비했던 질문들을 던졌다.
 

“여러분~! 우리나라 예법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喪)을 치렀습니다. 왜 하필이면 3년이었을까요? 1년이나 2년은 부족한가요? 아님 5년은 지나친 걸까요? 왜그랬을지 잠시 생각해 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당시 장면을 회상하기도 불편할 정도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었다. 그 표정들을 글로 기록할 수 있는 첨단 장비가 있었다면, 아니면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두었더라면, 참으로
가관이었을 게다. 침묵이 흘렀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뭐야~? 지금 뭔 소리여?' ‘아니, 지금 왜 갑자기 뜬금없이 3년 상이 뭐가 어떻다고 하는 거지?' ‘아무리 문제들을 뚫어지게 봐도 3년 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도대체 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아이~정말. 씨! 또 시작이야.


아이들의 그 싸늘한 표정과 침묵을 접하며 내 머리 속은 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도 난 준비해 온 나만의 수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면 당시로서는 그것이 올바른 수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 여기 주목하세요. 여러분, 왜 1년은 안 되고, 2년도 안 되고, 4년, 5년도 아니고 3년일까요?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본 사람 이야기 해보세요.”
 

“…”
 

적막이 흘렀다. 적막만 흐른 것이 아니었다. 증오와 경멸의 시선이 내게 함께 쏟아졌다. 당황스러웠지만 어렵사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다가 세상에 태어나면 엄마 젖을 몇 시간마다 한 번씩 먹을까요?"
 

역시나 아이들은 대답이 없다. 다만 내가 던진 질문에 호기심을 느낀 몇 아이들만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일반적으로 먹성이 좋은 아기는 두 시간마다, 그렇지 않은 아이는 세 시간마다 먹기도 합니다. 통상은 두 시간에서 서너 시간마다 한 번씩 먹습니다. 근데 두 시간마다 먹는 아기가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그럼 아기는 하루에 몇 번이나 모유 수유를 해야 하나요?”


“12번이요.”
 

“맞아요. 열두 번을 먹지요. 2시간 마다 한 번씩 먹는 거지요. 근데 자, 봅시다. 깨어 있을 때는 괜찮아요. 밤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밤 9시경에 엄마 젖을 먹었다면, 11시, 새벽 1시, 3시, 5시, 7시….”
 

“…….”
 

“근데, 신생아가 젖을 먹을 땐 어떻게 먹는 걸까요?"
 

역시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이 50분이 아깝고. 도대체 빨리 문제나 풀어줄 것이지…. 무슨 소리를 지금 하는 건지. 하는 표정들이 역력해진다. 이럴 땐 연극적 요소가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극대화 하는 법이 되기도 한다. 때론 연기자처럼 연기에 몰입해 아이들에게 적극적 공감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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