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서 교서로서 처음 접했던 충격

다시 며칠이 지난 후 학교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종 합격을 했다면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겨울방학 중이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신학기 준비로 여념이 없었던 때였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 행정실로 갔다. 그런데 뜬금없이 시간강사가 아닌 기간제교사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 측에서, 내 경제 상황이 곤란하다는 솔직한 답변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는지, 나중에 시간강사와 기간제교사의 차이점 등을 말씀해 주셨다. 수업시간만큼만 강사료가 지급되는 시간강사보다 방학 중에도 급여가 지급되고 수업시수와 상관없이 급여가 지급되는 기간제교사가 생활에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학교 측의 배려이자 시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인생 최초의 학교인 진명여자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당시 2월로 기억하는데 교과 협의회 자리에서 국어과 선배 교사들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분들은 너무나도 훌륭한 분들이셨다. 새내기 교사에게 자상하고도 친절하게 큰 도움을 주셨다. 교과서 대신 두꺼운 수능문제집을 건네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사실이 있었다. 교과 협의회 자리에서 교육 현장의 실체를 확인해버렸다. 새 학년에 가르칠 담당 교과목을 배정할 때였다. 당시 내겐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작문수업과 독서수업을 담당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작문', 그리고 자연계열 학생들에게는 '독서'를 가르치기로 했다.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열심히 교재 연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정말 의미 있는 수업, 재미있고 감동적인 수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업을 통해 나누고 싶은 간절함이 당시엔 있었다. 수업만큼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한 준비를 다짐했다. 준비 시간도 어느 정도 있었다. 교과서를 미리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교과서가 아니라  삼사백 페이지 정도 되어 보이는 두꺼운 수능 문제집을 한 권 건네 주었다. 그것은 작문과 독서 교과서가 아니었다.
 

처음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냐고 물었다. 이게 교과서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시간에 앞부분은 작문에 해당하고, 뒷부분은 독서 쪽이니까 반별로 알아서 문제를 풀어주면 된다는 응답이 돌아왔다. 그럼 시험은 여기 문제집에서 지문과 문항을 그대로 출제하는 것이냐? 물었다. 그랬더니 지문은 그대로 사용하되 대신 문항은 그대로 똑같이 출제하면 너무 쉬워지니 문항만 다시 구성을 해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출제하면 된다는 답변이었다. 
 

바로 이 기억이 지금까지도 내가 중등교육에 몸을 담고 처음 받았던 충격이었다. 동시에 두고두고 떠오르는 공포였다.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공교육을 생각할 때마다 나를 절망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아니, 교과서를 돈 주고 구입하면서도 정작 교과서는 받자마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채, 수능 문제집을 가지고 수업시간에…?', ' 그것도 보충수업 시간도 아니고 정규 수업시간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머리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누구도 이런 현상에 대해 심각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교과서를 구입하도록 요구할까? 왜 학부모님들CMS 계좌를 통해 교과서 대금을 인출하는 걸까?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교과서인데. 학생들은 왜 부질없이 교과서를 구입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아이들과 함께 인간과 삶과 성장에 대해 성찰하고 싶었다. 전국의 고등학교들의 공통된 모습인지 궁금했다. 교직에 있던 동기들과 지인들에게 확인했다. 그 결과,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이 사실이 나를 무척 당황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가지고 있었던 교육에 대한 이상적 관념이 너무도 강했기에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실은 너무도 분개해서 몇몇 지인들에게는 따져묻기도 했다.


"아니, 그렇다면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과 학원에서 근무하는 강사랑 차이점이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느냐?"
"뭐, 그런 쓸 데 없는 질문을 하냐? 다 그렇게 하는 거다. 수능시험이 아이들 인생을 결정하는데, 그럼 뭘 준비해 주냐?" 라는 핀잔만 많이 들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당시는 젊은 패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랬던지, 그런 현실을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자존심 상했다. 그건 교사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름 교재를 펼쳐 놓고 살아 있는 교육을 하려면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 할까 고민했다. 올바른 수업에 대한 생각들에 균열이 생기고 금이 가더니 무너져 내릴 지경에 이르렀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사들에게 강요되었던 현실이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공유하며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 그리고 우리들의 삶 속에 담긴 속살과 그 결들에 대해 아이들과 공감하며 때론 웃고, 때론 울기도 하며 인간과 삶과 성장에 대해 성찰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웠다.


3월이 되었다. 봄처럼 화사한 계절. 여고생들 앞에 서서 문학 작품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가슴 벅찬 일이다. 나름 수업 설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고3 수험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소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교육의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은 분명했다. 그 생각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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