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사로 발돋움하게 했던 기간제교사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바람직한 수업을 통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수업을 이룰 것인가? 바람직한 수업에 대한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판단된다. 그러던 차에 이왕 교사를 해보려면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기간제교사보다는 정교사가 되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명여고에서 체험했던 기간제교사로서의 2년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국어과 선후배 교사들과는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15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교류하면서 지금도 살갑게 지내고 있다. 힘들 때마다 기댈 곳이 되어 준 민현수 선생님, 항상 겸손하면서도 삶의 중심을 잃지 않는 변성희 선생님, 아이들과 현장에서 진실한 소통을 추구하는 임은주 선생님, 말수는 없지만 속이 깊어 지긋한 눈빛으로 항상 응원하고 걱정해주는 고등학교 선배 윤태성 선생님, 여행을 좋아하며 당당하고 멋진 삶을 추구하는 한용임 선생님, 단아함과 여유로운 맘으로 아이들을 품어주는 한시은 선생님. 양정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함께 생활했던 김정아 선생님, 영어과 장소정 선생님, 염진형 선생님, 김형규 선생님 등등.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들이었기에 십년이 넘은 세월에 무뎌지지 않고 지금도 간절하게 그리운 선생님들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선생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뒤로 하고 양정고등학교에 정교사가 되어 떠날 때 그 아쉬움은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정해진 운명을 따라 하나의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어야 할 때가 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내 맘속에 진명여고는 늘 그리운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 아마도 내가 경험한 첫 학교였기에 그런 듯하다. 늘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기회와 인연이 된다면 진명에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쨌거나 진명에서 기간제교사로 1년을 함께 했다. 국어과 선후배 교사들은 내게 희망 섞인 말씀을 건네주셨다. 너무 잘하고 있고 큰 도움이 되니까 내년에는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내심 큰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근무하던 2002년~2003년 무렵은 진명 창학 100주년 행사를 위한 초기 단계의 사업 구상과 자료 정리에 힘을 쏟던 시기였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업무를 찾다가 우연히 진명여고 1층에 있던 기념관실에서 고서적과 고문서들을 접할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완문(完文)’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들이 있었다. 조선 후기 고종의 후비였던 엄순헌 황귀비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영친왕의 토지전장 하사문인 완문과 1회 졸업생들의 졸업증서 등이 눈에 들어왔다. 완문의 경우에는 초서(草書)로 작성된 글이기에 아마도 해독을 할 수 있는 분이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초서로 된 완문을 탈초(脫草)하여 우리말로 국역을 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기념관실에서 혼자 완문과 각종 고문서를 번역하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나 2년 차가 되었어도 진명여고에서는 정교사로 채용하겠다는 의지나 언질이 없었다. 정교사를 희망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2003년 가을은 그렇게 허전한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겨울 같은 목동에 자리 잡고 있던 양정고등학교에서 국어과 정교사 1명을 선발하겠다는 교원초빙공고를 신문에 냈다. 채용 공고를 보고 정성을 다해 양정고등학교에 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하늘의 뜻이었는지 1단계 서류전형에 합격했으니 2단계 시강과 면접을 위해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시강을 하러 학교에 도착해 안내받은 장소로 갔더니 그곳에는 진명여고에서 함께 기간제교사나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선생님들 몇 분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참으로 민망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곤 서로 약속을 주고받았다.
“우리, 오늘 여기서 만난 건 서로 모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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