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교사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엄청난 테러였다. 수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고3 수험생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렇게 두어 달쯤 지났을 때로 기억한다. 교장선생님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며 호출을 하셨다. 교장실에 들어서자 너무도 반갑고 환한 표정으로 교장선생님께서 이리로 오라시며 자리를 권하시고 행정실에 인터폰으로 차를 좀 부탁한다며 무얼 드시겠냐며 정중하게 예우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 학교에서 소중한 교사이고 정중한 예우를 받는 것을 보니 나름 잘 적응하고 있는가보다.'하고 생각했다. 


교장선생님께서도 처음에는 선생님 모시고 너무 자랑스럽고 아이들도 표정이 밝아졌고, 인사도 잘하고 참 감사드린다는 뉘앙스의 칭찬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차를 다 마시고 감사하다는 말씀과 일어설 시간이 되었을 때쯤. 교장선생님께서 대단히 어려워하며 어렵게 입을 뗐다.


"선생님, 참….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한데. 수업 시간에 너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아이들이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하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다른 반에 비해 진도가 너무 늦는다고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선생님 수업이 정말 좋은 수업이고 우리나라도 그런 수업을 해야 할 때가 곧 올 것으로 믿습니다. 근데 이 아이들은 지금 고3이고 이제 수능시험이 몇 달 남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많이 급하고 위축된 아이들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급적이면 문제집 진도를 빨리 빼주시는 것이 아이들에겐 현실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때서야 내 자신이 눈치 없는 교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작문과 독서를 가르치는 담당 교사들끼리 중간고사 출제를 위한 협의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거기서 다시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하기로 300쪽 이상 되었던 두꺼운 문제집이었는데 앞부분 문학작품을 공부했던 작문의 경우 나와 함께 작문 수업을 담당했던 다른 선생님들의 진도가 70여 페이지까지 나갔다면 당시 내가 나간 분량은 겨우 20여 쪽에 불과했던 것이다. 작문의 경우에는 중간고사 때까지 70~80쪽, 기말고사까지 150여 쪽까지 해야만 독서 과목에서도 나머지 부분을 다 소화하고 2학기가 되면 다른 파이널 문제집을 몇 권 더 풀어준 다음 수능시험에 보내야 하는 것이 일 년간의 로드맵이었다. 


그런데 거의 두 달 동안 20여 쪽밖에 진도를 빼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왜냐면 시험을 배우지 않은 곳에서 출제할 수는 없었다. 함께 수업에 들어갔던 작문 교과목 담당 교사들 가운데 가장 진도가 늦었던 교사의 범위가 중간고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순간 함께 동일 교과목을 가르쳤던 선생님들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몇 개가 안 되는 지문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해야 했으니 어찌 보면 시험에 출제될 작품과 지문은 이미 결정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경험을 통해 고등학교에서 수업은 교사 개인의 이상적 철학과 교육관에 의해서 소신 있게 진행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소중한 교훈을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 깨달았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절하게 성찰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내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것이 이 땅의 교사들이 처한 교육현장의 실상이다. 도대체 양식 있는 교사들이 왜 현실의 부조리에 굴복된 채 살아가야 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이 땅에서 진정 깨어 있는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에 맞서야 하는지 당시에는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정면으로 맞서고 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작권자 © 은평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