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진을 저장하는 김민호 사진 작가

사진=김민호 사진작가

2014년 4월 16일, 전 국민은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이 사건 이후 가족과 생존자, 많은 시민들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로부터 네 번째 봄이 찾아왔다. 올해 안산에서는 합동영결식과 함께 안산 화랑유원지에 설치되어있던 정부합동분향소를 철거하고 안전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봉안시설을 갖춘 안전추모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또한 지난달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첫발을 내딛고 있는 세월호 4주기는 큰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일들이 변화를 맞은 한편 시민들이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이 있다. 4.16기억저장소에 기억을 차곡차곡 모으고 만드는 이들이다. 응암동에 사는 청년 사진 작가 김민호 씨는 4년째 기억저장소에 직접 찍은 사진을 담고 영상을 만들어 세월호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안전사회를 갈망한 청년 세월호 유가족과 인연을 맺다
김민호 사진작가가 세월호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안전 사회를 갈망하던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사진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김민호 작가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 보도만 지켜볼 수밖에 없던 많은 시민들과 똑같이 학생들을 전원 구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기반한 언론의 오보가 이어졌고, 정부는 국가 재난 대응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선장 탓으로 돌리는 국민 기만 행위를 보였다.

"14년 4월은 믿을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어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정부가 나를 과연 보호해줄 수 있는지 의문이었죠. 그러다 4월 말 청계 광장에서 했던 세월호 집회에 충동적으로 참여하게 됐어요. 이 전에도 다른 목적의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갔던 세월호 집회는 달랐어요. 공기가 정말 무거웠죠. 집회에 처음 갔을 때 사진기로 이 무거운 공기가 담긴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날 이후 김민호 작가는 꾸준히 세월호 집회에 참가했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남기고 선박을 빠져나갔다는 것을 알고는 집회에서 사진을 찍다 경찰과 싸우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러던 7월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회를 찾아가 첫 농성을 할 때였다. 김민호 작가는 유가족이 있는 국회를 찾았다. 집회를 여러번 참가했지만 유가족의 사진을 찍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유가족 어머니 중 한분이 세월호 안에 있을 딸의 학생증을 매고 농성하던 모습이 김민호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현재 4·16기억저장소 소장님이자 김도언 학생의 어머니 이지성 씨였어요. 그 분께서 딸의 학생증을 매고 농성하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 학생증 사진을 찍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사진=김민호 사진작가
사진=김민호 사진작가

유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사진을 찍는 것은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세월호 사진을 찍으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2014년은 김민호 작가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진과 관련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1년째 되는 해였다. 세월호 집회를 찾던 그는 사진을 찍는 일 말고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김민호 작가는 유가족들로부터 자녀들의 사진을 모아 인화하는 일을 생각해냈다. 유가족들에게는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사장에게 사진 인화지 400장을 빌려 집에 있던 사진 인쇄기로 사진을 인화했다. 그런데 사진을 받던 도중 문제가 하나 생겼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잖아요. 사진을 200장 넘게 보내주시는 부모들이 있었지만, 10장도 못 보내주시는 부모들도 계셨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정말 슬펐습니다.”

인터뷰 도중 김민호 작가는 사진을 많이 보내주지 못하던 부모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다시금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다른 부모들에 비해 사진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아 가슴이 아픈 부모. 그런 부모들에게 김민호 작가는 도움을 줄 수 없어 큰 슬픔에 잠겼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모두 이웃이고 친구에요”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사건이 됐다. 그리고 그 사건은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김민호 작가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이전엔 우리나라 학생들의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낸 대학생이었고, 세월호 이후엔 세월호의 유가족들의 마음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기억을 모으는 사진 수집가가 된 것이다.

“지난 4년은 살아온 게 아니라 살아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절망과 슬픔 속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억지로 살아낸 것이죠. 세월호 이후의 삶은 아마 계속해서 살아내는 과정일 것이고, 전 살아내면서 앞으로도 세월호와 관련한 사진을 수집하는 일을 계속 할 거에요. 세월호는 우리나라의 과거이고 현재이며 미래이기 때문이죠.”

이런 김민호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들이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4·16기억저장소에 모인 사진들이 시민들에게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하길 원한다. 오로지 사진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만을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민호 작가는 앞으로도 그리고 평생 세월호 사진을 수집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모두 영향을 받았어요. 저 또한 변화를 겪었고요.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유가족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친구에요. 그래서 함께 현재를 같이 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이웃으로서 친구로서 유가족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세월호 사진을 앞으로 계속 수집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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