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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라이프 맑음, 때때로 다이어트운동하며 친구를 사귄 추억이 어린 불광천
  • 박은하 시민기자
  • 승인 2018.04.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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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에 거주한 지도 어언 13년. 가장 추억이 많을 학창시절을 여기서 보내지 않은지라 별로 기억에 남을 장소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마음에 남는 장소가 몇 군데 있었다. 진관동에 살았지만 지금은 아기엄마가 되어 일산에 사는 만화가 친구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며 만화 아이디어를 나누던 메뚜기 다리, 시험 준비를 위해 드나들던 은평구립도서관, 부모님과 산책 다니던 둘레길 등이다. 그러나 한 장소를 골라보라면 역시 불광천을 꼽게 된다. 이곳은 나의 평생의 숙원인 다이어트의 한이 올올이 서려있는 곳이자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멋진 친구를 만나게 해준 추억의 장소이다.

2013년 즈음, 연례행사처럼 다이어트를 결심한 나는 헬스장에 기부하는 것을 그만두고 불광천에서 자연을 벗 삼아 운동을 하겠노라 결심했다. 매번 차타고 다녀만 봤지 불광천에 운동을 하러 간 건 처음이었다. 불광천은 정비도 잘 되어있고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 무섭지 않고 좋았다. 신나게 운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물가에서 노는 새들을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야기 상대도 없이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며 점점 운동 가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의 위기감을 느낀 나는 다이어트 카페에서 같이 운동하며 서로 의지를 북돋아주는 [다이어트 메이트]가 있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당장 카페에 글을 올렸더니 다음날 한 여자 분한테서 연락이 왔다.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가 두 살 많은 언니였는데 역시나 과체중과 운동에 대한 의지박약으로 고민하고 있었고 마침 불광천에서 운동을 시작하려던 차에 내 글을 보아서 연락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인연이냐며 우리는 지방과의 전쟁에서 전우가 되기로 맹세하고 당장 다음날부터 운동 스케줄을 잡았다.

다음날 저녁 7시에 불광천에서 첫 대면한 언니와 나. 메신저에서는 그렇게나 원대한 운동계획을 세우며 수다를 떨었던 우리였는데 처음 대화에 너무 열정을 쏟아 부었던 탓이었을까, 막상 만나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메신저에서는 언니 동생하며 말까지 텄는데 실제로 만난 우리는 서로를 극존칭으로 대하며 그저 나란히 걸을 뿐 대화가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짧은 대화마저 끊기고 그저 일 분이 한 시간으로 느껴지는 어색함의 고통 속에서 속으로만 머리를 쥐어뜯으며 걷는데 문득 언니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하러 나왔음에도 화장을 곱게 한 얼굴에서 정신적인 땀방울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언니도 나와 같은 어색함 속에서 후회를 곱씹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어떻게든 하고 싶었지만 정말 할 얘기가 없었다. 그 언니와 나는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관심사가 통하지 않았다. 유일한 공통 화제였던 다이어트와 운동은 어제의 수다로 소재가 고갈된 지 오래였다. 어색한 시간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듯이 우리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가벼운 산보 정도의 걸음에서 어느 순간 경보 수준의 파워워킹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힘들어서 잠깐 쉬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엄마와 함께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그 아이의 손에는 작은 핫도그가 들려있었다. 다이어트로 인해 5일 내내 샐러드만 먹었고 거기다 운동까지 한 터라 배가 무척 고팠다. 맛있어 보이는 핫도그를 보니 배고픔이 더 성화를 부렸다. 그 순간 옆에서 ‘핫도그다’라는 언니의 작은 소리가 들렸다. 언니의 시선도 핫도그에 박혀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언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별로 느끼지 못했던 진한 공감대를 느꼈다. 우리는 배가 고팠다. 언니도 그것을 느낀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마주친 우리는 그 때부터 음식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광천의 흐르는 물을 보면서 물냉면을, 길가에 서있는 나무를 보고는 도토리묵을, 길게 자란 풀을 보고는 스파게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치 일 분 같은 두 시간이 흘렀다. 다른 관심사는 전혀 달랐던 우리였는데 음식취향에 있어서만은 소울메이트 같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개인적인 취향에서부터 한국의 식문화 와 음식문화의 세계화 방안까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우리는 근처의 술집에 앉아 가게 사장님까지 포함하여 술안주에 대한 열띤 고찰을 나누고 있었다.

숙취를 동반한 다음날 아침. 운동하러 간대놓고 술 취해서 들어왔다고 엄마한테 등짝을 맞으며 언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언니, 저의 다이어트 메이트가 아닌 맛집 메이트가 되어 주세요.’ 그 언니는 지금까지도 맛있는 걸 먹으면 사진을 첨부한 대량의 소감문을 남겨주는 나의 좋은 맛집 친구로 남아있다. 그리고 매해 봄만 되면 서로의 다이어트 안부를 물으며 불광천에서 있었던 첫 만남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 불광천은 나에게 씁쓸한 다이어트 실패의 추억과 평생의 맛집 친구를 남겨준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박은하 시민기자  eunknigh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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